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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문 칼럼] 3년 간 고작 174건..‘한국형 레몬법’ 제대로 작동하려면

2022-04-18 11:08:58
BMW 뉴 5시리즈
BMW 뉴 5시리즈

[데일리카 안효문 기자] 겉은 멀쩡한데 실속이 없는 사람이나 물건을 두고 ‘빛 좋은 개살구’라 한다. 영미권에서 개살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과일이 레몬이다.

레몬은 육안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탐스럽고 향도 좋지만, 그냥 먹기엔 너무 신 맛이 강하다. 하지만 모양이 맛있는 오렌지와 종종 헷갈리는데다, 쉽게 상하는 경우가 많아 예전부터 소비자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영미권에서 제품에 하자가 있어도 소비자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교환 또는 환불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레몬법’으로 부르는 배경이다. 중고시장에서 소비자가 중고품의 상태를 잘 알 수 없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역선택을 하거나 피해를 입는다는 '레몬시장 이론(Lemon's Problem)'도 여기서 차용한 개념이다.

레몬법의 핵심은 소비자 권리 보호다. 제품이 복잡하고 비싸서 회사측이 보상을 꺼리는 제품, 잘잘못을 따질 때 책임소재를 소비자가 밝히기 어려운 상품들이 레몬법 적용 대상이다. 국내에선 신차 구매 후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2019년 1월 자동차관리법 및 시행규칙 등이 개정되면서 ‘한국형 레몬법’이 본격 도입됐다.

자동차관리법·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한국형 레몬법)에 따라 국내서 신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1년 또는 주행거리 2만㎞ 이내에서 반복적으로 결함을 발생하면 교환 또는 환불을 받을 수 있다. 엔진 등 중대 하자는 2회, 일반 하자도 같은 증상이 3회 이상 반복되면 구제 대상이다.

최근 국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되고 3년 동안 실제 소비자가 차를 교환이나 환불 받은 사례가 총 174건이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교환 등을 신청한 건수는 1592건, 국내서 판매된 차는 500만대를 조금 넘는다.

타이어 정비
타이어 정비

3년 동안 신차 약 3000대가 판매되는 동안 교환을 요청할 정도로 불량이 있다는 신고가 있었고, 이 중 약 10%에 대해 법원이 소비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신차 교환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이마저도 최근 6개월 여 간 많이 나아진 것이다.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되고 2년 반이 지난 2021년 8월까지 국내서 제품 불량으로 신차 교환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첫 물꼬가 터진 이후 기존에 계류됐던 사건들에서 소비자가 승소하는 사례가 늘었을 뿐이다.

사실 한국형 레몬법은 도입 시점부터 여러 비판을 받아왔다. 우선, 한국형 레몬법은 자동차 제조사 등이 신차 계약서에 관련 내용에 대한 내용을 담아야지만 적용 가능한데, 이게 강제사항이 아니었다. 여전히 중국산 등 일부 자동차는 레몬법을 적용받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결함 유무를 입증하는 책임도 여전히 소비자 몫이 크다. 자동차관리법 47조 3에 따르면 ‘자동차가 하자차량소유자에게 인도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된 하자는 인도된 때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되어있다. 6개월 이후에 문제가 발생해 교환 등을 요청하면 그때부턴 소비자에게 입증 책임이 넘어가는 구조다.

비교적 최근 개정된 법안임에도 시장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최근 신차 구매 시 장기렌트 및 리스 이용 비중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현행 규정 상 개인 명의로 직접 구매한 차가 아니라면 레몬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루시드 전기차가 자동차 캐리어에 실려 출고되는 모습
루시드 전기차가 자동차 캐리어에 실려 출고되는 모습

영미권에서 레몬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제조사가 결함 등을 입증하도록 법으로 강제성을 부여하고, 결함 인정 시 신차 교환은 물론 징벌적 배상까지 허용하고 있어서다. 강제가 아닌 중재에 그치고, 위반 시 처벌도 약한 한국형 레몬법으론 영미권과 같은 소비자 권익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입법 초기부터 끊이지 않았고, 3년 간의 통계는 이를 명백히 증명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레몬법이 너무 소비자의 손만 들어줄 경우 자칫 블랙 컨슈머에게 기업이 입는 피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를 가장 신봉하는 영미권에서조차 현재 그들이 운용 중인 레몬법도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부족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한국형 레몬법이 지금보다 더 소비자 편으로 다가간다 해도 지나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