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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신사적 스포츠카

Aston Martin
2014-12-30 15:50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데일리카 이한승 기자] 애스턴마틴, 브랜드 네임에서 이처럼 신사적인 어감을 갖기도 쉽지 않다. 물가 높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애스턴마틴은 지난해 100번째 생일을 맞이한 전통 있는 자동차 메이커다. 경기에 따른 부침이 심한 최고급 스포츠카 만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몇 차례의 위기도 있었지만 애스턴마틴 브랜드는 현재 건재하다.

애스턴마틴 DB시리즈는 세계적인 흥행 영화 007시리즈에서 주인공의 자동차로 출연해 디자인이 낯설지 않다. 지난 2006년 개봉한 ‘007 제 21탄-카지노 로얄’에서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카로 등장한 모델은 애스턴마틴 DBS로 DB9을 기반으로 한 스페셜 모델이다.

디자이너 이안 컬럼(Ian Callum)이 완성한 DB9의 외관 디자인은 애스턴마틴의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한다. 특히, 007시리즈의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의 슬림한 근육질 몸매와 딱 맞아 떨어지는 수트 차림, 그리고 안정감 있으면서 섹시한 눈빛은 애스턴 마틴이 DB9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의 라인업은 최상급 모델인 그랜드 투어러 쿠페 뱅퀴시, 그랜드 투어러에 스프린터의 감각을 부여한 DB9, 운동 성능을 강조한 밴티지, 그리고 4도어 쿠페 라피드로 구성된다. 또 경차급 모델 시그넷도 생산한다. 시그넷은 스마트 포투와 유사한 구성의 토요타 iQ를 재구성한 2인승 모델이다. 경차라 해도 기본 가격이 3만 파운드(한화 약 5117만원)를 가볍게 넘어선다.

이번 시승과 함께 한 모델은 애스턴마틴의 베스트셀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DB9 볼란테와 4도어 쿠페 라피드 S이다. 이외에도 시승 기회는 없었지만, 작은 차체와 V12기통의 강력한 엔진이 결합된 애스턴마틴 최고의 스프린터 V12 밴티지 S가 전시됐다.

■ 데이비드 브라운의 9번째 오픈카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의 모델명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지난 9월에서야 국내 시장에 처음 선보였기 때문이다. 시승과 함께한 DB9 볼란테에서 DB는 1947년 애스턴마틴을 인수한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의 이니셜을 의미하고, 9는 개발 순서를 나타낸다. 또 볼란테는 애스턴마틴 라인업에서 컨버터블 모델을 의미한다.

DB9 볼란테는 국내 판매 가격 3억을 가볍게 넘기는 고가의 스포츠카다. 경쟁 모델로는 벤틀리 컨티넨탈 GT 컨버터블이 있다. 애스턴마틴과 벤틀리 모두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브랜드로 12기통 엔진과 수작업 생산 방식을 특징으로 하는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이다.

■ 수트 입은 말 근육 신사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DB9 볼란테의 전면 디자인은 애스턴마틴의 전통적인 그릴 디자인을 중심으로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한다. 스포츠 모델임을 자랑하는 과격한 에어댐도 우람한 보닛 캐릭터 라인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볼륨감과 단차가 느껴지지 않는 일체감 높은 디자인으로 마무리했다. LED 주간주행등을 품은 헤드램프는 단아하다.

후면 디자인은 듀얼 머플러팁과 리어 디퓨저를 품은 넓고 두툼한 범퍼를 통해 높은 안정감을 연출한다. 애스턴마틴이 즐겨 사용하는 리어램프 디자인은 보디컬러 패널이 가로지른다. 트렁크 리드를 세워올려 스포일러 역할을 겸한다. 하나 하나 뜯어보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디자인이 어우러져 2m가 넘는 전폭과 함께 대단한 존재감을 표현한다.

측면 디자인은 후륜구동 플랫폼 특유의 늘씬하게 앞으로 뻗은 앞바퀴와 자연스럽게 흐르는 보디라인에서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실루엣을 보여준다. 도어에 내장된 도어 핸들은 일체감을 높이는 요소다. 20인치 대형 휠과 그 안을 가득 메운 브레이크 디스크 로터는 이 차의 성능을 가늠하게 한다. 뒷바퀴에는 두 개의 캘리퍼가 위치하는데, 작은 것은 사이드 브레이크와 연동된다.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실내 디자인은 대부분의 패널을 가죽으로 감싸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한다. 특히, 계기판과 센터페시아를 구성하는 버튼과 클러스터의 디자인은 금속 공예품을 보는 것처럼 정교해 보인다. 손바닥을 둥글려 감싸 앉는 느낌의 시트는 편안하다. 고급스럽지만 지나치게 부드럽지 않은 가죽은 내구성에서도 실망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 6000cc, 12기통, 그리고 애스턴마틴

DB9은 6리터 V12기통 자연흡기 엔진으로 6500rpm에서 최고출력 517마력, 5500rpm에서 최대토크 60.8kgm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터치트로닉 6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며,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의 가속시간은 4.6초, 최고속도는 295km/h로 제원상 표기된다. 제원만으로 평가하면, 터보엔진을 사용하는 최신 유닛을 당해내기 어렵다. 그저 여유로운 출력으로 받아들이면 편하다. 절대 수치와 서킷에서의 랩 타임이 우선이라면 다른 브랜드를 추천하다.

애스턴마틴 DB9
애스턴마틴, DB9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키홀더에 스마트키를 꼽아 누르면 V12기통 엔진이 낮게 포효하며 깨어난다. 다운사이징과 연료 소비효율이 강조되지 않던 시기에도 만나보기 어려운 12기통 엔진이다. 더욱이 2014년에 12기통 엔진음을 직접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낮게 깔리며 진동하는 배기음은 요란하지 않으면서 존재감이 확실하다.

■ 여유와 난폭함을 오가는 성능

DB9의 엔진은 공회전에 가까운 1500rpm에서 약 40kgm의 토크를 방출한다. 터보엔진의 2000rpm 부근에서 바짝 뽑아냈다 사그러드는 최대토크와 질감이 다르다. 낮은 회전에서 시작된 토크감은 고회전까지 꾸준히 상승하며 힘을 더한다. 자연흡기, 그것도 12기통이 만들어내는 여유다.

뱅퀴시 볼란테
뱅퀴시 볼란테

영하에 가까운 차가운 노면과 고성능 타이어는 DB9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며 엉덩이를 살짝살짝 흔들어댄다. 주행 중에도 스티어링 휠의 움직임과 강하게 가속페달을 자극하면 ESP 경고등이 점등되며 슬립을 알린다. DB9의 ESP는 반 박자 늦게 개입하며 운전자에게 잠깐의 자유를 선물한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60km/h 전후의 항속주행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가속페달에 힘을 가해도 RPM게이지의 바늘이 튀어오르지 않는다. 고단 기어에 고정된 채 1500rpm 부근에서 여유롭게 가속을 이어간다.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으면 그제서야 저단 기어로 바꿔 물며 출력을 쏟아낸다. DB9 볼란테는 기본적으로 그랜드 투어러의 성격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패들 시프터를 사용해 기어를 조작하면 운전자에게 통제권을 넘긴다. 레드존에 붙어도 연료를 차단하며 더 이상의 회전 상승을 저지할 뿐 스스로 변속하지 않는다. 강력한 가속력으로 인해 변속 타이밍을 놓친 것이 수 차례, 어지간한 상황에서 알아서 기어를 높여가는 모델과는 다르다.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DB9의 6단 자동변속기는 토크컨버터 방식의 변속기로 최신 듀얼클러치 변속기만큼 빠르진 않다. 하지만, 일반적인 자동변속기와는 감각이 사뭇 다르다. 메르세데스-벤츠 SL63 AMG의 스피드시프트 MCT변속기와 유사한 감각을 전한다.

■ 애스턴마틴제 매력 배기음

미끄럽고 차가운 노면이지만 풀가속을 명령했다.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는 안정적이면서 빠르게 속도를 올려간다. 앞에서는 12기통 엔진의 회전음이 새어나오고 뒤에서는 중저음의 배기사운드가 볼륨을 키워간다. 변속시마다 펑펑대는 배기음은 중독성 있다. DB9의 배기음은 스포츠모드의 고회전에서 상당히 볼륨이 커진다. 시끄럽거나 천박하지 않은 절묘하게 절제된 사운드다. 신사적으로 낮게 진동하는 배기음은 마세라티나 페라리, 람보르기니의 사운드와는 선을 긋는다.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DB9의 승차감은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타입이다. 을왕리 해수욕장 일대의 거친 노면과 과속방지턱에서도 운전자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형 컨버터블 보디에서 들리기 쉬운 잡소리나 추운 겨울날 서스펜션에서 들려올 법한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데일리카로 운영해도 좋을 만큼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뛰어나, 거침없이 속도를 올리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DB9 볼란테는 소프트탑을 닫았을 때 방음 능력이 상당히 좋다. 두툼한 패드와 여러겹으로 구성된 방음재가 제 역할을 한다. 오픈 주행시 바람의 유입은 크지 않았다. 머리 윗 부분을 흩날리는 수준이다. 한 겨울에 탑을 오픈하고 달렸지만, 감기에 걸리거나 콧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쉬웠던 부분은 이번 시승이 겨울철 국도변에서 진행된 것이다. 모터스포츠에 뿌리를 둔 애스턴마틴의 성능을 제대로 느끼려면 노면이 따듯하게 데워진 도로에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애스턴마틴 국내 수입사인 애스턴마틴서울은 현재까지 18대가 출고됐으며, 계약자 중 22명은 대기 중이라고 전했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애스턴마틴서울은 내년 서비스센터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국내 애스턴마틴 유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 애스턴마틴의 엔트리 모델 V8 밴티지를 내년 상반기에 국내 시장에 선보인다. 판매 가격을 2억 미만으로 묶어 포르쉐 911을 타겟으로 삼을 예정이다. 대기 고객 중에는 V8 밴티지에 대한 수요가 가장 많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