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산업화에 지극히 큰 영향력을 끼친 디자인 사조의 하나인 독일 공작연맹(German Werkbund)는 1907년 뮌헨에서 창설되었다.
공작연맹은 예술가와 공예가, 실업가, 저널리스트들의 공동체로 산업과 예술, 공예 무역 사이의 협조와 교육, 선전을 통하여 대량 생산 재화(Produkts)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목표를 두었다.
20세기로의 전환기에 공작연맹을 주도한 회원에는 페터 베렌스(Petr Behrens), 테오도르 피셔(Theodor Fischer),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 Muthesius), 브루노 파울(Bruno Paul), 리처드 리머슈미트(Richard Riemerschmid), 앙리 반 드 벨데(Henry Van de Velde)가 있다.
이 시대의 주도적 경향 (Tendency) 두 가지가 모두 공작 연맹에서 나타났다. 그 하나는 산업과 제품의 표준화였고(독일 DIN의 기초), 다른 하나는 알 라 반 드 벨데(à la van de Velde)의 예술적인 개성 표출이었다. 이들은 실상 20세기 디자인의 두 가지 결정적 경향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같은 시기에, 뜻을 같이 하는, 같은 중심 기조를 공유하는 공작연맹 조직들이 주변 다른 나라에서도 시작되었다.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 로고
1910년 오스트리아 공작연맹, 1913년 스위스 공작연맹, 스웨덴의 공예협회 (Slöjdforenigen, 1910-1917), 1915년 영국 디자인∙ 산업 협회가 그 예이다.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목표는 헨리 콜(Henty Cole)의 전통안에서 교육적인 일을 하면서 제품의 제작자와 소비자들에게 전체론적 제품의 미적 가치관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1차 대전 이후 독일 공작연맹이 한 가장 중요한 일은 1927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박람회, 바이젠호프 프로젝트(Weissenhof project)였다.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주도 하에,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막스 타우트(Max Taut), 야코부스 요하네스 피터 아우트(Jacobus Johannes Peiter Oud),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등을 포함한 많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옥과 아파트 건축 실행에 투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 홈페이지 캡처
새로운 건축 소재의 적용이 새로운 주택 컨셉의 디자인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의도는 이전에 언급된 대로 방(Room)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되돌려주었다.
바이젠호프 프로젝트(Weissenhof Projekt)는 집 자체에서 커피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근본적인 디자인 컨셉의 지배 하에 두려는 시도를 갖고 추진하는 전체적인 디자인 추구를 의미했다.
총체적인 예술 작품으로서 그 아파트는 한편으로 기본적인 기능과 공리주의로의 환원을 의미하는 미학적 모델의 전파를 위한 홍보의 도구로, 또 한편으로는 폭 넓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다양한 부문의 가구나 비품을 제공하고자 의도된 것이었다.
네덜란드 건축가 아우트(Aoutt)는 노동 계급 아파트를 예술적인 도전 과제로 다룬 최초의 사람이라고 간주되며, 바이젠호프(Weissenhof)박람회에 표현된 전체주의적 사상은 바우하우스의 기본 사상과도 부합한다.
독일공작연맹(Deutsche Werkbund) 설립자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n Muthesius) (출처 : Museum der Dinge)
돌이켜 보건대 바이젠호프 박람회는 건축에서 이른바 세계적인 스타일(International Style)을 최초로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1960년대 광역 도시권 주변에 지어진 위성도시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피상적인 형식적 표명과는 반대로 바이젠호프는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이용하여 사회 조건의 면밀하고 의미 있는 통합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