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안효문 기자] 차량용 반도체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비교적 반도체 재고를 잘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자동차 업계에서도 ‘4월 위기설’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현대차가 주력 차종인 쏘나타와 그랜저의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를 정도다.
산업계 관계자들은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인재(人災)와 천재(天災)가 겹쳐 발생했다고 입을 모은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판매가 줄자 자동차 업체들은 반도체 주문량을 줄였다. 가전 및 IT 부문 수요가 폭증했던 상황에서 반도체 업체들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이들은 차량용 반도체 대신 수익성이 좋은 IT분야로 생산 여력을 돌렸다.
르네사스 차량용 반도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자동차 경기가 살아나면서 자동차 업체들은 주문량을 원상복구하려 했지만, 반도체 업체들은 난색을 표했다. 이미 공장 가동률이 100%를 넘어선 상황에서 ‘돈 안 되는’ 제품을 만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인재다.
여기에 2021년 초 북미 지역에선 이상한파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이어졌다. NXP, 인피니언 등 주요 차량용 반도체 생산업체들이 한 달 가량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1위인 대만 TSMC는 올해 가뭄과 지진 때문에 정상적인 공장 가동이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차량용 반도체 주요 기업인 르네사스는 3월 발생한 화재사고로 적어도 100일 이상 생산이 어려운 상황이다. 천재지변의 연속이다.
티볼리 ADAS 시스템
2020년 중국산 부품 대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 부품공급처를 확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내 공장 가동이 멈추자 부품이 없어 차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발 빠른 손익계산의 결과가 강력한 외부충격에 속절없이 무너진 모습을 본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미국에선 자동차 기업들이 손을 잡고 정부에 ‘차량용 반도체 할당제’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산업이 살려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든 강제성이 있는 정책이든 자국 내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자국 자동차 업계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사실상 백악관이 개입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정도다. 경제를 넘어선 안보의 문제로 여겨서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탄탄한 중견 반도체 기업도 많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가 나서 이들이 차량용 반도체를 만들 수 있도록 인센티브 등을 지원하는 정책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당장 6개월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이후에 발생할 2차 충격을 지금 당장 대비해야 한다. 한국 업체들의 기술역량이면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긴 어렵지 않다. 생산라인을 정비하고, 이들이 손실을 보지 않도록 지원책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더 이상 경제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 상품이 됐다. 국가 경제 근간을 흔드는 전략물자가 됐다. 한국 같이 자동차 산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