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하영선 기자] 현대차가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싼타크루즈(Santa Cruz)를 공개했다. 콤팩트 SUV ‘투싼’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 만큼 픽업트럭이면서도 차체 사이즈는 부담스럽지 않고 아담한(?) 분위기다.
싼타크루즈는 현대차 알라바마 공장에서 생산돼 내달부터 미국시장에서 본격 판매된다. 현대차의 주력 차종이라기 보다는 미국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 등 시장 트렌드에 맞춰 라인업을 보강한 차원이다.
그러나 그렇게 스쳐지나듯 섣부르게 판단할 수만은 없다는 말도 나온다. 싼타크루즈는 어쩌면 현대차만의 깊은 속뜻이 담긴 글로벌 전략 차종으로의 부상(浮上) 가능성도 적잖기 때문이다.
싼타크루즈는 지난 2015년 미국에서 열린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콘셉트카 ‘HCD-15’로 소개되기도 했다. 딱 6년 만에 하나의 완성 제품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걸 감안하면 그동안 현대차만의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HCD (2015 북미국제오토쇼)
미국시장은 대형 픽업트럭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이 시장은 그만큼 생존 경쟁도 치열하다. 싼타크루즈는 콤팩트 픽업트럭이라는 점에서 현대차가 미국 RV시장에서 틈새전략을 펼치겠다는 의도가 숨겨졌다는 얘기다. 대형 픽업트럭 시장을 살짝 비켜나간 것도 단순히 볼 일은 아니다.
신차를 구매하는 데 있어 미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디자인이 꼽힌다. 싼타크루즈는 왠지 거친감이 강조되는 픽업트럭에 속하면서도, 오히려 도심지향적인데다 세련된 감각도 돋보인다. 픽업트럭으로서의 당초 개발 방향과는 언밸런스한 디자인이 적용됐다.
히든 라이팅을 비롯해 균형감이 더해진 바디, A~C필러에 이르기까지 다이내믹한 감각이 강조된 실루엣, 20인치 알로이 휠과 근육질의 휠 아치, 수평형 ‘T’자 형상의 시그니처 조명, 기능성을 강조한 적재공간 등은 그야말로 맵시롭다.
세그먼트는 분명 픽업트럭에 속하는데, 디자인 감각은 SUV에서나 봐왔던 전형적인 모습이 그대로 담겨졌다. 또 차량을 대면하는 불과 1~2초 안팎의 첫 인상은 SUV에 속하는 그림인데, 짐칸 등 기능성을 고려하면 분명 픽업트럭이다.
현대 싼타크루즈 픽업
싼타크루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현대차 디자인팀에서 맡았는데, 책임 매니저로 활동하는 브래드 아놀드(Brad Arnold) 디자이너는 “싼타크루즈는 (전통적인 방식의) 픽업트럭이 아니다. 싼타크루즈는 오로지 싼타크루즈일 뿐이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비틀어보면 싼타크루즈는 픽업트럭이 맞다. 싼타크루즈는 또 기능적 측면에서는 SUV 라인업에도 포함될 수 있다. 결국 싼타크루즈는 픽업트럭과 SUV로서의 디자인 특성이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의미다.
어쨌든 싼타크루즈는 정형적으로는 픽업트럭이라는 세그먼트에 속하지만, 적재함에 루프를 적용하는 등 살짝 튜닝하게 되면 SUV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기능성, 아웃도어 활동에서의 실용성을 두루두루 갖춰 픽업트럭과 SUV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겠다는 현대차의 의도적 전략이 숨겨졌다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미국시장은 최근들어 세단 약세 현상이 역력하다.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해 쉐보레, 캐딜락, 포드, 링컨 등의 브랜드에서는 세단 라인업을 아예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고 있다. 대신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한 SUV, 미니밴 등의 라인업 확대에 심혈을 쏟는다.
싼타크루즈
전통적으로 세단 시장이 강세를 보였던 한국 역시 SUV 시장 점유율이 50%를 뛰어 넘어선지도 꽤 됐다.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불리는 중국이나 유럽도 다목적성이 강조된 SUV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싼타크루즈는 콤팩트 픽업트럭과 콤팩트 SUV 고유의 특성을 골고루 갖췄다는 건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매력 포인트다. 두드러지는 디자인에서부터 기능성, 실용성에 이르기까지 유니크한 차량이다. 픽업트럭 소비자, SUV 소비자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현대차는 싼타크루즈 전기차를 비롯해 수소전기차 버전 등 파워트레인 다변화를 꾀하는 전략도 요구된다. 픽업트럭이면서도 아웃도어에 적합한 SUV 기능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에서 세그먼트를 파괴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에서 ‘올해의 인물’에 오른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겠다고 했다. 현대차가 싼타크루즈를 통해 세그먼트를 파괴하는 당돌한(?) 실험이 시장에서는 어떤 반응으로 귀결될지 기대감이 적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