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하영선 기자] 2021년 6월 13일부터 21일까지 딱 9일간. 이 기간은 현대자동차그룹 역사상 가장 중요한 분수령(分水嶺)에 속한다는 판단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미국 보스턴으로 날아갔다. 보스턴에 위치한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Motional)’을 방문, 자율주행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한 까닭이었다.
모셔널은 현대차그룹이 작년 3월 앱티브(Aptiv)와 함께 5:5 비율로 지분을 투자해 공동으로 설립한 자율주행 합작법인이다. 글로벌 자율주행 업계에서는 최상위의 기술력을 확보한 곳으로 인정받는다.
정 회장이 공식적으로 모셔널을 찾은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데, 그는 이번 방문을 통해 그동안 모빌리티 업계의 패러다임을 변혁할 핵심 기술로 꼽혀온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이오닉 5
그는 여기에 차세대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과 로보택시 추진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함께, 사업 영역을 고도화하고 시장 확대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는 게 현대차그룹 측의 설명이다.
모셔널이 현재 개발중인 차세대 자율주행 플랫폼을 적용한 아이오닉 5는 레벨 4 수준에 속한는 정도다. 기술적으로는 완전 자율주행차에 해당하는 레벨 5 바로 목전에 놓여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설계와 개발, 제조 역량과 모셔널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결합해 향후 로보택시나 차량 공유 서비스기업, 또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자율주행 플랫폼을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회장은 또 21일에는 현대차그룹이 작년 12월 본계약 체결 이후 약 6개월만에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대한 지배 지분 인수를 최종 완료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가치는 약 11억 달러(한화 약 1조2474억원)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현대차그룹이 80%, 소프트뱅크그룹이 20%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물류 로봇을 비롯해 안내 및 지원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진입을 위한 자율주행(보행), 로봇팔, 비전(인지/판단) 등의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핵심 기술력을 갖춘 곳으로 꼽힌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2족 직립 보행이 가능한 로봇 ‘아틀라스’ 등을 개발했다. 지난 3월에는 창고·물류 시설에 특화된 로봇 ‘스트레치’를 선보인 바 있다. 이들 로봇은 한발 더 나아가면, 의료뿐 아니라 제조, 물류, 건설, 국방 부문 등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로 로봇공학 분야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서 자율주행차 그리고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 팩토리 기술과의 시너지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차, 인간 중심 미래 모빌리티 비전 공개 (CES 2020)
정의선 회장은 지난 3월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처음으로 선정한 ‘2021 올해의 인물’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시상식에서 “전세계 자동차 산업은 디지털화와 전동화 중심의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은 이런 여건 속에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뉴패러다임을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 브랜드를 아우르는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모셔널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수를 마무리했다는 건, 유명 브랜드의 기술력을 쫓기만 했던 현대차그룹이 더 이상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현대차그룹이 선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선전포고다.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Pony)를 내놨던 현대차가 1968년 창립된 이후 53년 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