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안효문 기자] ‘배기량 1000㏄ 미만, 길이 3600㎜, 너비 1600㎜, 높이 2000㎜ 이하’
국내 자동차관리법에 나와있는 경차 기준이다. 크기가 작고 가벼워 경차(輕車)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법률상 표기는 '경제적인 차'를 뜻하는 경차(經車)로 되어있다. 분류 기준을 마련할 당시 많은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하고, 운용도 합리적인 비용으로 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작은 차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경차(經車)로 표기한다.
우리 정부가 경차에 각종 혜택을 준 이유는 명확하다. 1990년 이후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타난 각종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큰 차를 혼자 타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기름소비와 배출가스가 늘고, 교통체증도 심해진 것. 이에 따라 크기가 작고 기름을 적게 쓰는 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졋고, 이는 1991년 국내 최초 경차 대우 티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됐다.
2012년 내수판매 20만대를 넘어서며 절정을 맞았던 경차 시장은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2020년 국내 경차판매대수가 9만6000여 대로 2008년 이후 13년 만에 10만대 벽이 깨졌고, 올 상반기에도 누적판매 4만8000여 대에 그치며 10만대 회복에 빨간불이 켜졌다.
기아차, 모닝 어반
경차 판매 부진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많이 나와있다. 가격 인상에 따른 경제성 약화, 소형 SUV 등 경쟁 차종의 대두, 신차 부족으로 인한 상품성 하락 등이 주 요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경차 시장의 하락세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 시장이 확대되는 시기와 교모히 맞닿아있다. 내연기관차의 어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경차가 친환경차 시대에 하락세에 접어든 현실은 모순적이라고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친환경차 시대에 경차의 수명이 짧아질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경차도 결국 기름을 태우는 차인 만큼 궁극적으론 도로 위에서 사라지게 될 퇴출 대상이어서다.
새로운 기아 엠블럼이 적용된 더 2022 레이
현재 국내 시판 중인 경차는 쉐보레 스파크, 기아 모닝 및 레이 등 3종이다. 스파크는 2015년 완전변경 이후 부분변경으로만 대응하고 있다. 모닝도 2017년 신차 출시 후 페이스리프트만 나왔다. 레이의 경우 2011년 출시 후 완전변경 없이 유지 중이다.
‘자동차 제조사가 돈 안되는 신차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란 비판이 나온다. 경차는 태생적으로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승부를 봐야하는데, 경차라고 해서 개발비용이 극적으로 낮은 것도 아니다. 각국 정부가 내연기관차 퇴출 일정을 점차 앞당기면서, 각 제조사들은 내연기관차 개발을 중단하거나, 수익성 좋은 일부 차종에 자원을 집중하는 상황이다.
‘친환경 경차’ 혹은 ‘전동화(electrification) 경차’도 지금까지 매력도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이브리드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가격이 비싸 경차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에 경차 기반 배터리 전기차는 2010년대 초반 잠깐 등장했지만, 차에 실을 수 있는 배터리가 적어 주행거리가 100㎞ 초반에 머물러 현재는 사실상 퇴출됐다.
현대차, 경형 SUV AX1(코드명) 티저 이미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제품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경차가 현재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차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교통체증은 날이 갈수록 심각하고, 주차문제도 여전히 골칫덩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안전한 이동에 대한 관심도 높고, 차박 등 혼자 떠나는 여행 수요에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한다.
현대차가 4분기 출시 예정인 경형 SUV 캐스퍼(AX1)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친환경차 시대에도 ‘작은 차 큰 기쁨’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캐스퍼가 증명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무엇보다 도로 위에서 지금보다 더 다양한 아담하고 예쁜 차들이 스트레스 없이 쌩쌩 달리는 풍경이 만나볼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