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안효문 기자]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올 4분기가 바닥이라는 분석이 중론이지만, 다임러 등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은 2022년에도 반도체 수급 문제로 완성차 생산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동차 제조사들은 공급망 관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뿐만 아니라 철강, 마그네슘, 플라스틱 등 주요 자동차 원자재 대부분이 부족한 상황이다. 배터리용 희토류에서 시작된 자원전쟁은 이제 자동차 공급망 전체로 번져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서산 배터리 공장 생산라인
지난해 국산차 업체들은 전선 다발의 일종인 와이어링 하네스가 부족해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를 겪었다. 값싼 중국산에 의존한 결과다. 각사는 뒤늦게 공급망 다각화를 추진했지만, 생산 정상화까진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자동차 제조업은 고용효과가 크기 때문에 각국 정부가 거는 기대가 크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이 휘청이면 산업계 전반이 흔들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일본 내 자동차 산업 관련 종사자만 550만명 이상이다. 토요타가 올해 완성차 생산대수가 당초 목표치보다 40% 부족할 수 있다는 발표에 현지 언론들이 앞다퉈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분석기사가 쏟아졌을 정도다.
현대자동차그룹, 중국 광저우에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공장 건립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원자재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소수의 공급업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자재나 부품은 가격에 따라 공급처가 결정된다. 국내에도 많은 자동차 부품 및 원자재 공급 업체들이 있지만, 중국이나 동남아산 제품에 다수 의존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자동차 업체들은 경제 논리에 따라 공급망을 확보했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돈을 움직이는 자동차 회사 구매담당자들은 원자재 및 부품 시장에서 그야말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구매담당자들이 공급처에 찾아가도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기아 광주공장
최근 내로라하는 자동차 그룹들이 앞다퉈 배터리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만들지 않으면 미래 전기차 시대에 예상치 못한 공급충격에 시달릴 수 있어서다.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외주를 늘리고 조직을 분리했던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단일 기업이 생산 전반을 아우르는 내재화를 추진하면 경제적으론 비효율적일 순 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은 외부 환경에 따른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각국 정부도 이 같은 움직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기차 전환으로 줄어드는 일자리가 채워질 수 있어서다. 자동차 회사들의 ‘덩치 싸움’이 어디까지 번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