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조재환 기자] 너무 무거워서 들기도 힘들고, 연결하는 과정도 벅찬게 전기차 DC콤보(콤보 1 또는 CCS 1) 충전 케이블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 충전기가 앞으로 표준이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DC콤보를 앞세워 우리나라 모든 전기차 충전기 자체가 규격화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게 답일까요?
테슬라 모델3를 9개월 넘게 타면서, 슈퍼차저의 장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한 손으로 들기 편하고, 충전기 자체를 꽂고 빼는 과정이 간편하기 때문이죠. 슈퍼차저의 경우 미리 카드 결제 정보를 테슬라 홈페이지에 입력만 하면 자동으로 충전 결제가 되는 ‘플러그앤페이(Plug and Pay)’ 기능이 장착됐습니다.
다른 충전기들은 어떨까요? 대표적인 예시로 환경부 전기차 충전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환경부 전기차 충전기는 정말 많이 발전했습니다. 18분 정도 충전하면 되는 초고속 충전기까지 널리 설치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충전기가 더 많아지면, 다양한 전기차들의 충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 충전기들의 DC콤보 충전 케이블은 무겁습니다. 신형 충전기의 경우 도르래를 설치해 무게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냈지만, 기존 충전기들의 충전 케이블보다 가볍게 느껴질 정도는 아닙니다.
경기도 용인에 설치된 환경부 초급속 전기차 충전소 케이블에 연결된 기아 EV6
그렇다면 결제 방식의 변화는 있을까요?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전기차 오너들은 충전 시작 전 디스플레이를 마주해야 합니다. 충전 형태를 선택해야 하고, 충전량, 충전요금, 충전 당사자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해야 합니다. 이후 결제 단말기에 환경부 회원 전용 카드를 태그하거나 신용 카드를 삽입해야 합니다. 충전 시작 전 과정이 매우 번거롭습니다.
환경부 전기차 충전기 속 충전케이블 대다수는 철제로 구성된 보관함 속에 있습니다. 대다수 보관함은 평소에 열리지 않지만, 사용자 인증이 끝나면 직접 열리는 구조입니다. 근데 충전기에 따라 이 충전함이 열리는 속도가 크게 차이 납니다. 심하면 60초까지 기다렸다가 충전을 진행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는 전기차 오너들에게 이같은 방식이 정말 적절할까요?
환경부뿐만 아니라 한국전력, 민간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급속충전기는 대다수 이와 같은 방식을 씁니다. 충전기 수를 앞으로 더 확충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충전 형태에 파격적인 변화를 줄만한 기술 지원 투자 방안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올해부터 운영이 시작된 현대차그룹 E-pit의 경우, 테슬라와 유사한 플러그앤페이 시스템이 적용됐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운영하는 각사별 페이(Pay) 시스템을 활용하면, 지갑을 꺼내지 않고 바로 충전이 가능한 구조죠.
그렇지만 현대차그룹 전기차 오너들이 플러그앤페이 편의성을 느끼기엔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습니다. 바로 충전소 수 때문이죠.
테슬라 슈퍼차저
24일 현재 전국에 있는 E-pit 충전소 수는 16곳에 불과합니다. 현대차그룹은 경기도 판교지역과 광주광역시 등에 E-pit을 추가할 예정이지만, 61곳에 설치된 테슬라 슈퍼차저 충전소에 비해 작은 규모입니다. 테슬라는 현재 17곳에 슈퍼차저 충전소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 전국 테슬라 슈퍼차저 충전소 수는 80곳이 넘을 전망입니다.
전체적으로 DC콤보 충전 방식 자체가 테슬라 슈퍼차저보다 불편한데, 왜 정부는 이 충전 방식 자체를 정답으로 보고 있을까요? 지난 2018년 발표된 국가기술표준원 ‘전기자동차 급속 충전방식 통일화를 위한 KS 개정 고시’를 살펴봤습니다.
이 고시 안내에는 DC콤보에 대해 “미국, 캐나다 등 북미에서 미국자동차공학회 표준(SAE)으로 채택된 방식으로 완속 타입 1 방식과 호환이 되고, 충전시간이 A.C. 3상 방식보다 빠르며, 차데모 방식에 비해 차량 정보통신에 유리한 장점이 있다”고 소개됐습니다. 단순히 충전 시간과 충전구 구조 상 편의 때문에 정부가 DC콤보 방식을 정답으로 본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충전 방식에 대한 정부의 생각 자체가 달라져야 할 때가 왔습니다. DC콤보 충전 표준 자체에 대한 변화가 어렵다면, 테슬라가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충전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ESS 시스템을 활용해 전기차를 다양한 장소에서 충전시킬 수 카트형 충전기를 개발했고, 로봇형 충전기를 개발한 곳도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충전 시스템은 이미 많은 국내 행사를 통해 소개됐지만,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습니다.
현대차그룹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E-pit 전기차 충전소
어떤 분들은 무선 충전 자체가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무선 충전이 활성화될 수 있는 시간은 꽤 걸릴 수 있습니다. 제네시스가 이 시스템 자체를 이끌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무선충전 시스템 공사만 진행될 뿐, 실질적인 운영계획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선 충전 자체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완속 충전 구조라, 급한 사정이 있는 전기차 오너들에게 비효율적입니다.
제가 봤을 때 현재 가장 이상적인 급속충전 플랫폼은 바로 현대차가 고안해낸 하이 차저입니다. 천장에 있는 충전기가 차량별 충전구 위치에 따라 움직일 수 있고, 전자동으로 충전기가 내려오는 구조를 갖췄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DC콤보 충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 충전소는 서울 강동과 경기도 고양 등 총 2곳 밖에 없는 게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