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조재환 기자] “고가의 수입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는 전기차 완속 충전소를 사용할 수 없다. 국내 법규상 친환경차 지위를 받지 못해서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등 고급 수입 브랜드의 PHEV는 완속 충전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자동차 동호회 등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PHEV는 20~40㎞ 정도는 기름 소비 없이 달릴 수 있는 대신 완속 충전기로 배터리에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 비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도 ‘환경친화적 자동차’ 인정 가능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해당 차량 등이 국내법상 규정하는 연료효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BMW 330e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살펴보죠. 이 차는 지난 2020년 6월 환경부 배출가스 및 소음인증을 받았는데, 연료효율이 복합 ℓ당 16.7㎞입니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요건 등에 관한 규정’ 내 ‘에너지소비효율’을 근거를 살펴보면 PHEV가 친환경차로 인정 받으려면 복합 ℓ당 18.0㎞ 이상 효율을 기록해야 합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BMW 330e는 친환경차 기준에 미달인 것으로 보입니다.
BMW, 330e PHEV
그런데, 환경부 인증자료에 보면 BMW 330e는 어엿하게 저공해차 2종 기준을 충족했다고 나와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이 주장은 복잡하게 꼬여있는 국내 법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지자체조차 법을 명확히 해석하지 못하다보니 크게 혼선을 빚고 있는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에 대한 정의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요건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게 업계 지적입니다.
■ 국내법상 친환경차 기준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을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이 법에서 말하는 환경친화적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태양광자동차, 하이브리드자동차, 수소전기자동차 또는 대기환경보전법 제46조제1항에 배출가스 허용기준이 적용되는 자동차 중 산업통상자원부령으로 정하는 환경기준에 부합하는 자동차’로 정의됩니다.
여기서 또 조건이 크게 3가지로 나눠지는데 그 중 우리가 ‘나’항을 지켜봐야 합니다. 이 조항을 보면 “대기환경보전법 제2조제16호에 따라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저공해자동차의 기준에 적합할 것”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더 뉴 E300e 익스클루시브
그럼 대기환경보전법 제2조제16호는 저공해자동차를 어떻게 정의할까요? 크게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이 없는 자동차’ 또는 ‘제작차의 배출허용기준보다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라고 정의합니다.
결론적으로 고가의 수입산 PHEV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요건 등에 관한 규정’ 내 ‘에너지소비효율’ 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환경부가 정한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한다면 환경친화적 자동차로 분류 가능하다는 겁니다. 해당 차량들이 완속 충전기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거죠.
그럼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에너지소비효율 기준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연료효율 기준은 사실 친환경차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중요한 기준입니다. 해당 차량들은 재 국내에서 친환경차 보조금을 받지 못합니다.
■ PHEV가 급속 충전기를 쓴다고? 애 타는 전기차 이용자들
다른 이야기도 하나 꺼내보겠습니다. 최근 전기차 이용자들 사이에서 급속 충전기를 사용하러 갔다가 PHEV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불편을 겪었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강남구 내 환경부 급속충전기서 충전중인 제네시스 GV60 전기차(기사와 관련 없음)
PHEV는 배터리 용량이 전기차보다 작고, 구조상 급속 충전기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급속충전기가 설치된 주차공간은 PHEV가 사용해선 안된다는 게 전기차 이용자들 주장입니다.
한번 관련 법령을 살펴볼까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제11조의2는 ‘환경친화적 자동차 충전시설의 충전구역’과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전용 주차구역’을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같은 법 ‘제11조의2’ 7항을 보면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동차를 환경친화적 자동차 충전시설의 충전구역에 주차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표기됐습니다. 법에서 말하는 각 호는 전기자동차, 외부 전기 공급원으로부터 충전되는 전기에너지로 구동 가능한 하이브리드자동차라고 표기됐습니다. 즉 배터리전기차든 PHEV든 전기차 충전소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죠.
다만 이 법은 논란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PHEV 차주들이 별도 어댑터를 활용해 급속충전기를 쓰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인데요. PHEV 차량들이 어댑터를 활용해 급속충전기를 쓰면 일반 완속충전기 충전과 비슷한 속도로 충전이 진행됩니다.
물론 공공 충전기의 경우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PHEV 차주들이 하루종일 급속 충전기를 이용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수십분 정도 충전하기 위해 급속 충전기를 찾는 전기차 이용자들 입장에선 얼마 충전도 하지 못할 PHEV가 급속 충전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 달갑진 않을 겁니다.
스타필드 하남 전기차 완속 충전소.
사실 이 부분은 법적인 문제보다 이용자들의 시민의식이 더 큰 문제이긴 합니다. 참고로 전기차 충전방해 행위 단속은 일반 내연기관차량 뿐만 아니라 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모든 차량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충전이 끝나면 다음 사용자를 위해 바로 이동 주차하는 매너가 법조항보다 더 중요합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친환경차의 정의, 친환경차 종류에 따른 충전기(주차구역 포함) 이용 가능 여부 등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법 구조나 설명이 너무 복잡하고, 누구 하나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 것이 원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좀 더 쉽고 친절하게 정부가 해당 법에 대해 설명해주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