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의 수명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실효 사이클 수와 방전 깊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온도나 방전 속도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차량의 배터리 관리시스템이 최적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가정을 하도록 하겠다.
실효 사이클 수(EFC, Effective Full Cycles)는 배터리 용량에 해당하는 만큼 에너지를 끌어다 쓸 때마다 1 사이클씩 올라간다. 방전 구간이 100→0% 될 때까지 한 번 써도 1 사이클, 100→50%를 두 번 해도 1 사이클, 75→50%를 네 번 해도 1 사이클 쓴 것으로 본다.
방전 깊이(DoD, Depth of Discharge)는 얼마나 높은 잔량에서 시작해서 낮은 잔량까지 방전했는지 보는 기준이다. 이것은 극단적일수록 배터리 수명을 단축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차량에서 널리 쓰이는 NMC 계열 리튬이온 전지의 경우 통상적으로 100→0% 식으로 쓰면 약 430 사이클 후 용량이 80% 저한된다고 본다. 반면 80→20%로 쓰면 그 수준으로 저하되는데, 1800 사이클이 걸린다.
휴대전화는 대개 하루 한 번 완전히 충전했다가 완전히 방전하는 것에 가깝게 쓰인다. 그래서 500 사이클이 되는 1년 반 내외에 욜양이 10~20% 줄어드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전기자동차도 이런 식으로 쓰고자 한다면 볼트, 코나, 니로 같은 차량 기준으로 매일 400km씩 타야 한다. 그러면 1년 반 만에 20만km를 타게 된다.
현대차 아이오닉 5
그런데 설령 이렇게 타더라도 배터리 관리시스템이 휴대전화보다 정교하게 설계돼 있으므로 배터리 용량 감소가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4년 동안 볼트를 41만km 타면서도 배터리 열화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국내 사례가 기사화된 적이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1년에 2만~4만km 타면서 중간에 잘 충전해서 쓰는 사용자라면 10년 동안 수십만km를 탔더라도 심각하게 주행거리가 줄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금 더 잘 관리를 해서 더 오래타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0~20% : 될 수 있으면 여기까지 잔량이 떨어지는 것은 지양하시기 바란다. 낮은 전압 상태가 지속되면 배터리 구성 물질에 무리가 가고 불필요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등 성능이나 수명에 지장을 주는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그래서 이 구간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수명이 가장 좋지 않다. 급속 충전 속도는 완전히 바닥이 아닌 이상은 상당히 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충은 신속하게 할 수 있다.
20~80% : 이 범위 내로 운용하면 배터리에 가해지는 부담도 가장 적고, 급속 충전 속도도 대체로 최고(20~60% 안팎)에서 중간(60~80% 안팎) 수준을 기대할 수 있다. 장거리 주행 중 급속 충전을 종종해야 할 때 시간 낭비를 피하려면 이 범위 내에서 운용하면 된다.
기아 EV6
80~100% : 매일 타고 다닌다면 여기까지 충전해놓아도 배터리 수명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으나, 100% 채우고 장기간 방치하면 부담이 발생한다.
장기간 운행을 안 할 예정이라면 50% 안팎까지만 채워놓는 게 좋다. 급속 충전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구간이므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이 구간에서 급속 충전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