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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서킷 위 펼쳐진 진수성찬..포르쉐 월드 로드쇼 가보니

Porsche
2022-05-27 18:19
포르쉐 718 박스터 GTS
포르쉐, 718 박스터 GTS

[용인=데일리카 임상현 기자] 한번 경험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포르쉐 바이러스’. 다양한 신차를 경험하는 직업 특성상 진부하고 식상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좀처럼 연이 닿지 않아 생긴 선입견은 반나절 만에 싹 사라졌다.

포르쉐 월드 로드쇼. PWRS로 불리는 일정은 매년 치뤄지는 포르쉐의 연례행사다. 올해 무대는 용인 AMG 서킷. 맨 앞줄에 서있는 911부터 가장 늦게 합류한 타이칸 시리즈까지 뜯고 맛보고 즐길 드림카만 수십대다.

첫 번째 순서는 타이칸 시리즈. 포르쉐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이자 가속력 하나 만큼은 911 터보까지 넘보는 만능 재주꾼이다. 파나메라 똑 닮은 4도어 쿠페 부터 적재공간 부풀려 실용성을 챙긴 타이칸 투리스모까지 소비자 취향 저격한 라인업도 화려하다.

포르쉐 타이칸
포르쉐, 타이칸

한정된 시간 탓에 서킷 진입에 준비된 모델은 최상위 터보 S와 바로 아래 터보다. 시스템 출력 761마력, 680마력의 힘을 네바퀴로 뿌려대는 무지막지한 녀석들은 무거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임에도 일반 도로보다 서킷 위가 제 집인 듯 코너 하나 하나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반발력 강한 페달 위에 슬며시 발을 올리자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몸놀림은 영락없는 전기차다. 위이잉 하며 실내로 퍼지는 고주파음도 여느 전기차와 다르지 않다. 피트 레인을 벗어나 조금씩 올리는 속도. 이내 직선주로에서 이어지는 가속과 급제동. 모든 동작이 눈 깜짝할 새 끝이 난다.

귓가를 짜릿하게 만드는 사운드도 없는데 몸으로 느껴지는 긴장감은 박서엔진 장착한 포르쉐 형제들보다 한수 위다. 머릿 속으로 줄줄이 읊던 숫자와 단어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2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2

부족한 운전실력을 감쪽같이 숨겨버린 4D 섀시 컨트롤과 감쇄력을 바짝 조였음에도 단 한번 신경질 반응이 없던 3 챔버 에어 서스펜션, 타이어 스키드음도 허락하지 않는 토크 벡터링 플러스(PTV Plus) 등의 조합은 전기차에서도 명불허전이다.

쿵쾅거리는 마음이 채 식기 전 곧장 오늘의 메인 코스인 911과 718 박스터에 몸을 실었다. 첫 번째 주자는 718 박스터 GTS 4.0. 포르쉐의 막내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꽁무니에 붙은 GTS 배지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으로 4기통 2.0ℓ, 2.5ℓ로 폐활량을 줄여버린 기본 라인업과 선긋는 6기통 4.0ℓ 심장을 품고 있다.

맏형 911까지 넘보는 완벽한 밸런스와 무게 배분, 운전석 뒤로 자리잡은 미드십 구조는 7800rpm까지 솟구치는 박서 엔진과 만나 최고의 궁합을 선사한다. 성인 두명 몸을 단단히 붙들고 407마력의 힘으로 코너로 향하는 실력이나 탈출 시 반박자 빠르게 가속 페달을 종용하는 다그침도 718 박스터 GTS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들다.

포르쉐 타이칸
포르쉐, 타이칸

포르쉐 718 박스터 GTS
포르쉐, 718 박스터 GTS

여기에 걸걸하게 거친 숨을 토하는 터보엔진 대신 고회전까지 막힘없이 내뱉는 자연흡기 사운드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 0→100㎞/h까지 가속시간이나 최고속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흡기 미드십 스포츠카를 손에 쥘 수 있는 기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다음은 911 시리즈 중 가장 강력한 터보 S다. 이날 경험해본 모델 가운데 타이칸 시리즈를 제외한 가장 높은 출력을 가진 괴물같은 녀석이다. 최고출력 662마력, 최대토크 81.6㎏f·m의 샛노랑 차체는 떡 벌어진 펜더, 대형 리어 윙 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911 라인업 가운데서도 꼭짓점에 있는 만큼 실내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차량 전체를 감싼 질 좋은 가죽과 촘촘한 패턴의 카본 트림, 두 손에 쏙 감기는 스티어링 휠 등 영락없는 스포츠카다.

포르쉐 911
포르쉐, 911

포르쉐 911 터보 S
포르쉐, 911 터보 S

한정된 시간 속 911 터보 S를 온전히 느끼기에는 충분치 않아 노멀모드를 건너뛰고 곧장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를 오가며 트랙으로 나섰다. 역시나 압도적인 가속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쿠페 기준 2.7초 만에 해치우는 실력은 스로틀을 끝까지 열고 쫓아오는 718을 저멀리 따돌린다.

대칭 구조를 가진 대형 VTG 터빈을 거쳐 뿜어져 나오는 음색보다 한 발짝 빠르게 움직이는 몸짓은 꾸준하게 밀어내는 자연흡기의 선형적인 패턴과 완전히 선을 긋는다. 마치 멱살잡고 강제로 끌고가는 행동 대장처럼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거칠기 그지없다.

고회전에 오르면 힘빠지는 터보차의 고정관념도 911 터보 S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서킷 위를 날뛰는 행동을 바로 잡는 포르쉐 트랙션 매니저먼트(PTM)와 앞, 뒤 구동력을 자유롭게 오가는 사륜구동 시스템,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포르쉐 911 GT3
포르쉐, 911 GT3

포르쉐 911 GT3
포르쉐, 911 GT3

마지막은 911 GT3다. 손끝이 저릿한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전이지만 쨍한 푸른 바탕의 레이스카 부럽지 않은 포스에 벌써부터 기가 죽는다. 모터스포츠 기술을 잔뜩 머금은 GT3는 스완넥으로 고정한 대형 리어윙 하나만으로도 시선집중이다.

일반도로에서 마주쳤다면 부담스러웠을 겉모습이지만 서킷 위에선 이날 준비된 수많은 포르쉐들 가운데 가장 맞춤옷 입은 모델이다. GT3는 타고 내리는 과정부터 쉽지 않다. 몸집이 크지 않아 스포츠 시트도 부담스럽지 않던 여느 포르쉐와 달리 푹 꺼진 엉덩이, 온몸을 바짝 조인 버킷 시트 앞에선 멋지게 타고 내리는 동작은 일찌감치 포기다.

몸을 구겨넣자 그제서야 도로 위 레이스카 단어가 실감이 난다. 여느 911 시리즈와 같은 실내지만 미끌림을 방지하는 알칸타라와 타코미터 5시 방향에 쓰여진 숫자 10000rpm, 수동변속기를 닮은 기어노브 만으로 구구절절 설명은 끝이다.

포르쉐 911 GT3
포르쉐, 911 GT3

포르쉐 911 GT3
포르쉐, 911 GT3

역시나 모든 동작이 뻣뻣하다. 가속페달은 돌같이 무겁고 스티어링 휠은 두 손가득 힘이 실려야 제대로 조작이 가능하다. 가장 기대가 컸던 자연흡기 엔진음은 엄지 척. 짧은 직선에서 있는 힘껏 스로틀을 열자 타코미터는 곧장 9000pm으로 향한다. 정밀한 기계가 내는 소프라노 음색을 양산차에 맛 볼 수 있는 사치는 오직 911 GT3 뿐이다.

터보 S와 달리 배기량을 200㏄ 늘린 4.0ℓ 엔진은 최고출력 510마력, 최대토크 47㎏f·m로 마력과 토크가 한참 열세다. 특히 81.6㎏f·m의 토크를 왈칵 쏟아내는 터보 S에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종이 위 쓰여진 숫자로 판가름할 포르쉐가 아니다.

터보 S가 멱살잡고 이끄는 야수라면 GT3는 정교한 한방으로 상대방을 해치우는 킬러와 같다. 돌덩이처럼 무거웠던 가속페달은 단계별로 세밀한 조작이 가능한 칼과 같고 두손 가득 움켜쥔 스티어링 휠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정확하게 앞머리를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2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2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2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2

엔진이 저멀리 등 뒤에 있어 속도가 오를 수록 앞바퀴의 피드백이 희미해지는 911의 단점도 GT3에서 만큼은 먼나라 이야기다. 신형으로 오면서 지지대를 하나 더 늘린 더블 위시본을 쓴 결과는 명확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속도에서도 GT3는 앞바퀴의 끈끈한 접지력을 절대 잃지 않는다. 언젠간 포르쉐도 리어 엔진의 고집을 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던 비난에 목소리에는 설명이 필요없는 묵직한 한방으로 해결이다.

반나절 동안 치뤄진 타이트한 진행.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탄 포르쉐는 지친 기색 없이 멀쩡한데 체력은 이미 바닥나 버렸다. 수십대의 포르쉐를 그것도 서킷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행사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독일에서 건너온 인스트럭터의 한마디가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포르쉐는 스포츠카 만을 만듭니다. 타이칸, 파나메라, 카이엔, 911 모두가 스포츠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