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제공, 정리=데일리카 하영선 기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로 (톱티어의) 꿈을 현실로 이룬다.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배터리 사업 초기부터 구상이 되었는데요. 본격적으로 추진한 건 2005년 소형 배터리 흑자 달성 이후입니다. 당시에는 각국의 환경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돼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였습니다.
초기에는 소형과 유사하게 일본 업체들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었는데요. 미국과 유럽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에 일본산 제품들이 90% 이상 채택됐기 때문입니다.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자동차 기술은 앞서 있었으나 배터리 기술은 확보하지 못해 일본산 배터리를 써야 했습니다.
삼성SDI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가운데 파트너를 물색했는데요. 배터리 업체와 자동차 업체 간의 전략적인 제휴가 시간이 갈수록 수직관계로 전락하는 양상이 눈에 띄어 삼성SDI는 자동차 업체가 아닌 자동차 전장 업체와의 합작을 통한 시장 진출로 방법을 달리합니다.
삼성SDI, 2008년 9월 보쉬와 공동으로 SB리모티브 설립
2007년 오랜 탐색 끝에 삼성SDI는 세계 최대 전동공구 업체이자 자동차 전장 업체인 독일의 보쉬와 손을 잡게 되는데요. 당시 보쉬의 매출은 약 70조 원으로 월등한 1위 자동차 전장 업체였습니다. 전 세계 50개국에 7만 2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죠. 보쉬도 전기자동차 시장을 겨냥해 배터리 업체 파트너를 찾던 중에 삼성SDI를 만난 것이었는데요. 기존에 보쉬의 전동공구에 삼성SDI의 소형 배터리가 탑재되다 보니 기술과 품질에 높은 신뢰가 있었습니다.
2008년 삼성SDI과 보쉬는 합작사인 ‘SB리모티브(SB LiMotive)’를 설립하고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렸는데요. 배터리 기술은 있지만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이해도와 네트워크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삼성SDI와 세계 1위 자동차 전장 업체지만 배터리 기술이 필요했던 보쉬의 상호 관심사가 정확히 일치한 덕분에 합작 사업은 강한 추진력을 갖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사업을 조망해보면, SB리모티브는 삼성SDI가 사업 영역을 소형 배터리 중심에서 중대형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는데요. 몇 년 후 보쉬가 가지고 있던 SB리모티브의 지분 50%(전량)를 삼성SDI가 인수하며 SB리모티브 사업은 종료됩니다.
이 과정에서 삼성SDI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스템을 갖춘 에너지 회사로 거듭나는 성과를 거두었죠. 2009년 7월 SB리모티브에는 놀라운 낭보가 날아듭니다. BMW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삼성SDI가 최종 선정된 것입니다.
당시 BMW는 순수 전기자동차 전용 모델을 개발·출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가장 큰 이슈로 배터리의 안전성을 꼽았습니다. 자동차 사고는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검증된 안전성이 중요했습니다. 삼성SDI는 가장 안전한 배터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죠. 그 결과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후발업체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시장을 선점하던 경쟁사를 제치며 수주라는 성과를 거둔 것이죠.
이후 BMW와 맺은 첫 파트너십은 삼성SDI가 유럽 시장에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 중요한 레퍼런스가 되었는데요. 이후 삼성SDI는 또다른 유럽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과 아우디 등에도 배터리 납품을 개시하게 됩니다.
삼성SDI, 2009년 9월 차세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 기공식
BMW와 삼성SDI는 2019년 11월 2021년부터 10년간 약 35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죠. 삼성SDI의 울산사업장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을 처음 시작한 곳으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의 메카’로 불리는데요. 처음 수주에 성공한 삼성SDI는 배터리 생산을 담당할 거점이필요했고 고심 끝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용 배터리의 생산 거점으로 울산사업장을 선택하게 됩니다.
원래 울산사업장은 삼성SDI의 모태사업장으로 디스플레이 시절부터 시작된 긴 역사와 영광의 기억들을 간직한 곳인데요.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라는 입지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또 인근에는 소재 관련 화학 업체들이 많아 배터리 소재 확보도 용이하죠. 생산과 납품 모두에 유리한 입지를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울산사업장의 기공식은 2009년 9월 10일 삼성SDI와 보쉬의 주요 경영진, 국무총리와 울산시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는데요. 당시 기업 행사에 국무총리가 참석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삼성SDI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 진출에 대한 국가적인 기대가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죠. 울산사업장은 약 2년 후인 2011년 상반기부터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삼성SDI, 중국 서안 법인 SAPB
삼성SDI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주요 생산 거점을 여럿 두고 있는데요. 가까운 곳으로는 중국을 빼놓을 수 없겠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은 세계 승용차의 20%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판매량 상위 10위 기업에 중국 기업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경쟁력이 미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기존 내연기관의 부족한 기술력을 확보하기보다 새로 시작하는 전기자동차에서 선두를 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외국 기업에게는 좋지 않았는데요. 정부에서 자국 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해 자국산 부품만 사용하도록 해 수출이 쉽지 않고 해외 자동차 기업의 진출 조건도 까다로웠기 때문이죠.
중국 전기자동차 시장의 성장을 예견한 삼성SDI는 중국 민영 자동차 부품 기업인 안경환신을 파트너로 선정하고 2014년 6월 글로벌 배터리 제조 기업 최초로 합작법인을 정식 출범했습니다. 이렇게 설립된 ‘삼성환신(시안) 동력전지 유한공사’는 2015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을 완공하고 본격적으로 양산에 돌입했습니다.
삼성SDI, 헝가리 법인 SDIHU
삼성SDI는 2016년 8월에 헝가리 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합니다. 유럽 고객들과의 신규 프로젝트 수주가 이어지며 유럽 내 생산 거점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죠. 삼성SDI는 기존의 헝가리 PDP 생산 공장을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생산 공장으로 재건축하기로 결정하고, 부다페스트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괴드시의 약 33만제곱미터 부지에 신규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기존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건축 기간과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생산기지와도 지리적 접근성이 좋아 고객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점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2017년 5월에 헝가리 배터리 공장을 준공하고 그 다음 해부터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삼성SDI, 오스트리아 법인 SDIBS
이와 함께 삼성SDI는 배터리 팩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전문업체 인수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의 기업을 검토했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의 ‘마그나 슈타이어 배터리 시스템즈(MSBS, Magna Steyr Battery Systems GmbH & Co OG(마그나))’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는데요.
마그나는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업체인 마그나 슈타이어(Magna Steyr)의 자회사로 다임러, 포르쉐, 아우디 등 유럽의 주요 자동차 업체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팩을 공급한 경험이 있어 자동차 산업 프로세스에 대한 높은 이해와 기술 경쟁력을 두루 갖춘 최적의 업체였죠.
삼성SDI는 2015년 2월 인수 계약을 체결하여 마그나는 2015년 신규 법인인 SDIBS(Samsung SDI Battery System)로 재출범합니다. 이로써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삼성SDI는 전기자동차 뿐 아니라 ‘e-모빌리티’ 시장으로 사업 확장을 기획하게 되는데요. 전기자동차 한 대에는 스마트폰 약 6,000여 개 분량의 배터리가 들어가지만, 전기버스에는 이보다 많은 1만 개 이상의 배터리가 탑재되죠. 전기트럭과 전기버스에 배터리를 납품할 경우 성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요.
삼성SDI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구축함과 동시에 전기버스와 전기트럭 같은 전기상용차로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도전에 나서게 됩니다.
2009년 12월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인 미국 델파이와 하이브리드 트럭·버스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시작으로 2016년 만-스카니아(MAN-Scania)에 전기상용차용 배터리를 공급하였고, 2018년 다임러그룹 자회사 에보버스(Evobus)에 전기버스용 배터리를 공급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축적된 성과를 바탕으로 2019년 7월 삼성SDI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BMW, i7 M70 xDrive
세계적인 상용차·중장비 업체인 볼보그룹과 차세대 e-모빌리티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전기트럭은 운행패턴이나 적재물량에 따라 배터리 용량이 다양하여 적게는 수십 킬로와트시(kWh)에서 많게는 메가와트시(MWh)까지 큰 용량이 필요합니다.
향후 전기트럭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볼보는 전기상용차의 대규모 상용화를 추진하기로하고 가장 중요한 배터리 분야의 파트너로 삼성SDI를 선택한 것이죠.
삼성SDI와 볼보는 전기트럭용 배터리 팩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는데요. 배터리 셀과 모듈은 삼성SDI가 공급하고 볼보는 삼성SDI의 팩 기술을 활용해 볼보 현지 공장에서 팩을 조립하기로 합니다. 2019년 9월에는 독일의 배터리 팩 제조업체 아카솔(Akasol)에 2020년부터 2027년까지 13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셀과 모듈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볼보, 다임러, 만트럭을 비롯하여 프랑스의 열차 제조업체 알스톰(Alstom) 등 유럽 주요 업체에 배터리 시스템을 공급하는 아카솔과 협력하여 삼성SDI는 차세대 고성능 배터리 기술에 대한 폭넓은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2022년 5월 삼성SDI는 스텔란티스(Stellantis)와 함께 미국의 첫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셀·모듈 합작법인의 부지를 인디애나주 코코모시로 선정하고 25억 달러 이상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는 지난해 말부터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삼성SDI는 이번 미국 합작법인 투자를 통해 ‘한국-중국-헝가리-미국’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4각 공급 체제를 구축하게 되어 전기자동차 시장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삼성SDI의 미국 시장 공략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2023년 7월에는 스텔란티스와의 2번째 합작공장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해당 공장은 연산 34GWh 규모로 1공장과 같은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건설될 예정입니다.
GMC 허머 EV (Hummer EV) (밀포드 프루빙 그라운드, MPG)
2024년 8월에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과 전기자동차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본계약을 진행했습니다. 해당 법인은 약 35억 달러를 투자해 초기 연산 27GWh 규모로 시작해 향후 36GWh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법인의 위치는 인디애나주 세인트 조셉카운티 뉴칼라일 지역입니다.
이 밖에도 2023년 10월에는 현대자동차와 최초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26년부터 2032년까지 7년간 현대자동차의 차세대 유럽향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삼성SDI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에 맞춰 '2030년 글로벌 Top Tier 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