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전 세계 완성차 업계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앞세운 차세대 제조 경쟁에 돌입했다.
단순한 자동화 단계를 넘어,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공장을 제어하는 ‘지능형 생산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주요 제조사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AI 퍼스트(AI-First) 공장’을 구현하며, 생산 효율과 품질, 탄소 저감까지 한 번에 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선 현대차그룹은 싱가포르에 설립한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통해 로봇과 AI가 결합된 초자동화 생산 시스템을 선보였다. 특히 외신 CNN도 최근 방송에서 ‘미래 공장의 모델’로 조명하며, 로봇이 인간의 작업을 실시간 검사하는 장면을 소개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Spot)’은 작업자를 따라다니며 품질 검사를 수행하고, 오류 가능성이 높은 공정을 촬영하면 AI 알고리즘이 이를 분석해 조립 상태를 자동 판별한다.
BMW, 노이어 클라쎄 모델 BMW 뉴 iX3
HMGICS는 싱가포르 최초의 전기차 생산 기지로, 연간 3만대 생산 능력을 갖췄다. 현재 약 200대의 로봇이 운용 중이며, 조립 및 검사 공정의 70%가 자동화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현대차는 난양공대(NTU)와 협력해 스마트팩토리 확장에 박차를 가한다. AI, 로보틱스, 스마트 제조, 디지털 전환 등 차세대 기술을 공동 연구 중이며, 이를 통해 결함 감지·3D 프린팅·지능형 로봇 시스템 등 스마트팩토리 핵심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BMW는 헝가리 데브레첸(Debrecen)에 AI 제어 전기차 공장을 완공하고 신형 SUV ‘뉴 iX3 노이에 클라쎄(Neue Klasse)’ 생산을 앞두고 있다. 해당 공장은 건설 전부터 완전한 디지털 트윈 형태로 설계·시뮬레이션된 세계 첫 사례다.
BMW는 AI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모든 공정을 사전에 검증해 설비와 라인을 정밀하게 구성했고, 완전 가동 시 1000대 이상의 로봇과 인력이 AI 시스템의 통제 아래 운영된다.
생산 과정의 효율뿐 아니라 지속가능성도 눈에 띈다. BMW는 기존 공장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을 90% 감축하고, 도장 공정의 전력화만으로 연간 1만 2000톤의 탄소 배출을 줄일 것으로 전망한다. 공장 전력의 25%는 50헥타르 규모의 자체 태양광 발전 단지에서 공급된다.
메르세데스-벤츠, 디 올 뉴 GLC 위드 EQ 테크놀로지
메르세데스-벤츠는 ‘디지털 퍼스트 프로덕션(Digital First Production)’ 전략을 내세우며, 독일 라스타트와 헝가리 켁셰메트, 중국 베이징 공장에 신형 MMA(Modular Mercedes Architecture) 플랫폼을 적용한 디지털 생산 체계를 구축 중이다.
또한, MO360이라는 자체 디지털 생산 생태계를 통해 전 세계 공장을 실시간 데이터로 연결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전기차·하이브리드·내연기관 모델을 한 라인에서 유연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덕분에 라스타트 공장은 고정밀 가상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해 생산 라인과 설비 위치, 물류 동선을 사전에 최적화할 수 있으며, 기존 A클래스·B클래스 등 생산을 중단하지 않고도 신차 양산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헝가리 켁셰메트 공장은 NVIDIA의 Omniverse 플랫폼을 활용해 공장 전체를 디지털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을 구현했다. 이 기술을 통해 협력업체 조율 시간이 50% 단축되고, 공정 전환 속도는 두 배 이상 빨라졌다. 또한 벤츠는 AI 기반 도장 공정 제어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20% 절감했고, 자체 차량 운영체제 ‘MB.OS’를 생산 단계에 처음 적용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속도를 기존 대비 10배 향상시켰다.
폭스바겐은 AI·디지털 트윈·클라우드 기술을 결합해 전 세계 40여 개 생산 거점을 하나로 묶는 ‘팩토리 클라우드(Factory Cloud)’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독일 작센(Sachsen) 공장은 에너지 손실 구간을 실시간 분석하는 에너지 모니터링형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드레스덴의 ‘투명 공장’에서는 AI 협업 로봇과 가상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실험 라인이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장비 설치 전 병목 현상과 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해 생산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폭스바겐은 다쏘시스템의 3D EXPERIENCE 플랫폼을 도입해 차량 개발과 생산 시뮬레이션을 통합 관리하고, AI 분석을 통해 부품 조달과 조립 공정을 자동 최적화함으로써 비용 절감과 품질 향상 효과를 동시에 달성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행보를 전통 제조업의 혁신을 넘어, ‘데이터로 움직이는 공장’으로의 진화를 가속하는 흐름으로 본다.
AI가 공정 제어를 맡고, 디지털 트윈이 생산 현장을 실시간으로 복제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자동차 제조는 기계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