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캐스퍼 일렉트릭은 시작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내연기관 모델과 외형은 거의 같지만, 차량 제원이 달라지면서 ‘경차’가 아닌 ‘소형차’로 분류됐다. 이로 인해 행정 절차에서 혼선이 생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스퍼 일렉트릭은 현대차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만큼,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차량이다. 결과물은 꽤 성공적이었다. ‘공간의 마술사’라 불리는 현대차가 만든 만큼 실내 공간감이 뛰어났고, 디자인 또한 세련됐다. 특히 전동화 과정을 거치며 비율이 한층 안정돼 오히려 내연기관 모델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덕분에 유럽을 넘어 일본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결국 2025년 ‘월드 카 오브 더 이어(World Car of the Year)’ 시상식에서 ‘올해의 전기차’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수요는 폭발적이다. 문제는 공급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출시와 동시에 대기 수요가 몰리며 역대급 출고 지연을 기록 중이다. EV 인스퍼레이션과 프리미엄 트림은 약 16개월, EV 크로스는 13개월이 소요된다. 특히 투톤 루프나 매트 컬러를 선택할 경우 최대 2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캐스퍼 일렉트릭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그룹의 합작사 HLI그린파워가 제작한 NCM 배터리가 탑재된다. 프리미엄은 42kWh, 인스퍼레이션과 크로스는 49kWh 사양이 적용된다. 최고 출력 역시 다르다. 프리미엄은 최고출력 71.1kW(97마력), 인스퍼레이션과 크로스는 84.5kW(115마력)를 발휘하며, 최대 토크는 147Nm(15.0kgf·m)로 동일하다.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 가능 거리는 프리미엄 278km, 인스퍼레이션 315km(복합 기준)다.
주행감은 만족스럽다. 일상 주행에서 필요한 만큼의 출력으로 답답함을 느낄 일이 없다. 토크 밴드는 내연기관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덕분에 전기차를 처음 운전해보는 사람이라도 불쾌하거나 어색함을 느낄 일이 없다.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회생제동을 끈 상태에서 페달을 밟지 않고 탄력 주행을 시도했다. 구름 저항이 낮아 차가 도로 위를 부드럽게 흘러간다. 덕분에 전력 효율성이 뛰어나다. 복합 전비는 15인치 휠 모델이 5.8km/kWh, 17인치 휠 모델이 5.2km/kWh다. 시승차는 17인치 휠이 장착된 인스퍼레이션 트림이었다. 실제 주행해보니 트립 컴퓨터상 전비는 6.5km/kWh를 기록했다. 별도의 연비 주행을 하지 않고 교외 지역 위주로 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승차감은 기대 이상이다. 사실 내연기관 경차나 소형차는 승차감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출력이 낮은 탓에 진동과 소음이 많고, 온전히 하체 성능을 느껴볼 새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캐스퍼 일렉트릭은 달랐다. 충격적일 만큼 부드럽게 세팅돼 있고, 노면 충격을 흡수하는 질감도 만족스럽다. 오히려 한 체급 위 경쟁 모델보다 완성도가 높다고 느껴질 정도다.
다만 스포츠 주행에서는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하지만 차량의 성격과 목적을 감안하면 결코 단점으로 볼 수는 없다.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캐스퍼 일렉트릭의 외관은 기본 캐스퍼와 동일한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전동화 모델의 경우 내연기관 버전 대비 차체 크기는 전장 230mm, 전폭 15mm, 휠베이스 180mm가 늘었고, 전고는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진 차체 크기에 맞춰 비율을 조정한 덕분에 두 차량의 차이점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전기차에 어울리는 세부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풀 LED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 픽셀 디자인의 LED 방향지시등과 후진등이 새롭게 적용됐으며, 충전 포트는 전면에 배치됐다. 측면은 기존 캐스퍼와 큰 차이가 없지만, 두꺼워진 C필러와 신규 휠 디자인이 신선한 인상을 만든다. 후면은 전면 디자인 요소를 이어받아 등화류와 하단 스키드 플레이트로 통일감을 완성했다.
확장된 휠베이스 덕분에 2열 공간도 넉넉하다. 운전석을 기준으로 주먹 두 개 이상의 레그룸이 확보됐고, 플랫 플로어 구조로 발 공간이 넓다. 슬라이딩과 리클라이닝 기능을 지원해 공간 활용성도 뛰어나다. 상위 차급에 적용되던 고속도로 주행 보조,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로 유지 보조 기능 등도 탑재돼 편의성이 돋보인다.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캐스퍼 일렉트릭은 단순한 전동화 모델이 아니다. 기존 내연기관 캐스퍼의 장점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전기 구동 시스템을 통해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실내 공간 활용성, 주행 질감, 전비 효율성 모두 기존 경차의 한계를 넘어선다. ‘경차 그 이상’을 지향한 현대차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실용성과 효율성을 모두 갖춘, 전동화 시대의 새로운 도심형 기준이 되기에 충분한 상품성을 품었다.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의 국내 판매 가격은 2936만원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