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22일 오전 9시,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정숙했던 연구동은 잔잔한 음악과 웃음소리로 가득했으며, 실험복을 입은 연구원들 사이에는 설렘이 감돌았다.
이유는 ‘제16회 현대차그룹 아이디어 페스티벌’이다. 지난 2010년부터 현대차·기아 R&D본부·AVP본부가 매년 개최해 온 행사로, 직원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실물로 구현해내는 자리다.
올해는 총 116건의 아이디어 중 20개가 본심에 올랐고, 그중 6개가 최종 본선 무대에 섰다. 각 팀은 실제 차량에 자신들의 기술을 적용해 실물로 구현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디지-로그 락 시스템(Digi-log Lock System)’이다. 센터 콘솔 다이얼을 자물쇠처럼 돌려 자신만의 패턴을 만드는 방식이다. 상하좌우로 돌리거나 클릭을 활용해 자신만의 잠금 패턴을 설정하면, 해당 패턴을 풀지 않는 이상 글러브박스나 수납함을 열 수 없다. 짧은 시간 안에 적용할 수 있어 도난 방지에 매우 유용하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차량에 지문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실제 사용률은 15%에 불과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이번 기술이 지문인식을 대체할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음으로는 ‘트레일러 토잉 프리컨디셔닝(Trailer Towing Pre-Conditioning)’이 소개됐다. 유럽 시장의 경우 높은 견인 능력을 요구하는 수요층이 많다. 이는 곧 판매량과 직결되는 요소다. 이에 냉각 시스템을 개선해 투싼 하이브리드의 견인 능력을 기존 1500kg에서 1800kg까지 끌어올렸다.
세 번째로 공개된 ‘디벨트(dBelt)’도 주목할 만했다. 활동에 제약이 있는 임산부나 노약자도 안전벨트를 풀지 않고 차량의 기능을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든 기술이다. 작동 원리는 벨트에 부착된 버튼을 실내 카메라가 인식하는 방식으로, 별도의 전기 신호 없이 작동한다. 또한 실내 카메라가 없는 차량의 경우 무선 통신 방식을 활용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제16회 현대차그룹 아이디어 페스티벌 현장
이어서 소개된 것은 차량 번호판을 기반으로 차주와 소통하는 ‘스냅플레이트(Snap Plate)’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앱을 통해 번호판을 촬영하면, 차주의 실제 번호 대신 시스템이 생성한 ‘안심번호’로 연결된다. 개인정보 노출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단순한 연락 수단을 넘어 주거 관리나 응급 식별, 심지어 결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발표자의 설명에 객석이 술렁였다. 작은 불편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모빌리티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현장의 온도를 바꾼 것은 ‘S.B.S(Seat & Belt with Stability)’였다. 발달장애인의 불안 증세를 완화하기 위한 착석형 패드로, 보호자가 원격으로 공기압과 온도를 제어할 수 있다.
연구원 진형완 씨는 “어릴 적 어머니가 특수교사로 발달장애 학생을 돌보셨다”며 “아이들이 돌발 행동을 할 때 어머니는 안아주며 달래곤 하셨지만, 운전 중엔 그럴 수 없었다. 그 경험이 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이 아이디어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사람을 위한 발명’이었다. DTP(Deep Touch Pressure) 원리를 적용해 ‘포옹하듯 눌러주는 압력’으로 불안을 완화한다. 발표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 무대는 대상을 수상한 ‘액티브 옴니 내비게이션 트랜스포터(ANT)’였다. 조향 없이 타이어 내부의 기어 구조만으로 전 방향 이동이 가능한 모빌리티다. 도넛형 타이어와 정교한 기어 메커니즘을 통해 전후좌우 이동은 물론 제자리 회전까지 구현한다. 기존 메카넘 휠보다 마모가 적고, 비나 눈에도 강하다. 여러 대가 도킹해 협업하면 대형 화물 운송도 가능하다.
현대차·기아 연구개발인사실장 백정욱 상무는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현대차·기아 임직원들이 혁신의 씨앗을 싹 틔우는 장이다”며“앞으로 더 많은 연구원들이 창의 역량을 내재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