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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우아함과 강력함, 그 경계”..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 P400

Land Rover
2025-10-23 16:13
랜드로버 뉴 레인지로버 벨라
랜드로버, 뉴 레인지로버 벨라

[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랜드로버는 ‘SUV 전문 브랜드’다. 험지 주파에 특화된 디펜더는 수십 년 동안 사랑받아 왔으며, 오늘날에도 마니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대륙 횡단에도 무리가 없는 넉넉한 공간 활용성을 자랑하는 디스커버리 역시 브랜드의 상징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랜드로버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바로 고급 라인업, 레인지로버(Range Rover)다.

지금이야 SUV가 완성차 시장의 주류가 됐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세단이 ‘고급차의 기준’이었다. 매끈한 외관과 부드러운 승차감이 곧 럭셔리의 상징이던 시절, 랜드로버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레인지로버는 오직 ‘프리미엄 SUV’라는 콘셉트 하나로 시장을 밀어붙였다.

상품성은 완벽했다. 레인지로버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고객은 충성고객으로 남았다. 하지만 문제는 판매량이었다. 플래그십 SUV라는 포지션상 높은 가격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브랜드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작은 레인지로버’가 필요했다.

그렇게 2011년, 이보크(Evoque)가 세상에 공개됐다. 등장 자체가 파격이었다. ‘고급 대형 SUV’의 수요는 이미 존재했지만, ‘소형 프리미엄 SUV’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차를 누가 사겠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레인지로버 벨라 P400

하지만 이보크는 모든 예상을 깨뜨렸다. 컴팩트한 차체, 대담하고 세련된 디자인, 그리고 레인지로버의 감성을 그대로 담은 고급 인테리어. 여기에 탄탄한 안전성과 편의사양까지 더해지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6년, 랜드로버코리아가 한국 진출 16년 만에 연간 판매 1만 대를 돌파했는데, 그중 이보크가 전체의 약 40%를 차지했다. 결국 이보크는 ‘레인지로버’를 랜드로버의 서브 브랜드로 격상시킨 일등공신이 됐다.

이보크의 성공은 브랜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도로 위에서 레인지로버가 눈에 띄게 늘었고, 브랜드 이미지도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다만 최상위 모델인 보그와 스포츠는 억대 가격으로 접근성이 낮았던 반면, 이보크는 상대적으로 작고 젊은 감각에 치우쳤다. 그 ‘허리’를 채워줄 중간 라인업이 필요했다.

그 결과 탄생한 모델이 바로 레인지로버 벨라(Velar)였다. 벨라는 고급감과 실용성, 그리고 디자인의 완성도를 모두 아우르며 ‘레인지로버의 균형점’으로 자리하게 된다.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레인지로버 벨라 P400

그중에서도 벨라의 플래그십 P400 모델을 시승했다.

파워트레인은 3.0리터 직렬 6기통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과 자동 8단 변속기가 조합됐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더해져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56.1kg·m를 발휘한다.

덕분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5초, 최고 속도는 250km/h에서 제한된다. 복합 기준 공인연비는 8.2km/ℓ다.

전반적인 주행 질감은 부드럽다. 엔진 회전수가 낮을 때는 자연흡기 차량처럼 매끄럽게 가속하고, 속도가 붙으면 스포츠 세단에 버금가는 강력한 성능을 낸다.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단순한 패밀리카로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성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행감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누구나 손쉽게 고성능 차량을 다루는 듯한 안정감이 인상적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개입 또한 인상적이다. 시동이 꺼졌다가 켜지는 전환 과정이 놀라울 만큼 매끄럽다. 내연기관 기술이 정점에 달한 요즘, 웬만한 양산차 대부분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벨라는 그 이상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운전자의 감각을 거스르지 않는 미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불쾌한 진동이나 소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공기를 매섭게 빨아들이는 흡기 사운드만이 운전석을 가득 채울 뿐이다. 여기에 6기통 특유의 묵직하고 정제된 배기음이 더해지며 운전자는 쉽게 차량에서 내릴 수 없을 만큼 몰입하게 된다.

공인연비는 수치상 평범하지만, 실주행에서는 약 30% 높은 효율을 기록했다.
승차감은 더 이상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돼 상위 모델보다 약간 단단하게 세팅됐지만, 차량의 성격과 완벽히 조화를 이룬다. 노면을 따라 흐르는 움직임은 마치 물 위를 항해하는 요트 같다. 레인지로버와의 여정은 ‘운전’이라기보다 ‘항해’에 가깝다.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레인지로버 벨라 P400

에어 서스펜션이 없던 초기 모델과 비교하면 승차감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지 단점으로 지적되던 2열의 단단한 반응도 사라졌다. 이제는 오너드리븐뿐 아니라 쇼퍼드리븐 용도로도 손색이 없다.

드라이브 모드를 ‘다이내믹’으로 전환하는 순간, 벨라는 전혀 다른 차가 된다. 완만했던 반응은 순식간에 날카로워지고, 스티어링은 묵직해진다.

이내 급격한 코너가 이어지는 와인딩 코스에서 벨라를 몰아붙였다. 전자제어 장치를 모두 해제한 상태였기에 언더스티어나 스키드음이 터질 줄 알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벨라는 오히려 코너를 한 번 더 말아쥐듯 돌아 나갔다. 마치 고성능 LSD가 장착된 차량처럼 정교한 후미 움직임을 보였다. 후륜 조향 시스템이 작동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레인지로버 벨라 P400

서스펜션의 움직임은 분명 크지만, 그 탄성이 오히려 노면의 리듬을 타게 만든다. ‘움직임이 많다’는 표현보다 ‘생동감이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트랙션 컨트롤이 개입할 때조차 억지스럽지 않다. 동력을 무조건 차단하는 대신 필요한 만큼만 제어해 운전자가 스스로 다루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시킨다. 운전자를 온전히 몰입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차다. 레인지로버는 언제나 그랬듯, 소비자가 원하는 순간에 정확히 ‘그 감각’을 꺼내놓는다.

디자인 또한 우아하다. 전면부는 크리스털을 세공한 듯한 시그니처 DRL과 픽셀 LED 헤드램프가 프런트 그릴과 연결돼 수평 라인을 형성한다. 각 헤드램프에는 4개의 픽셀 모듈과 67개의 LED가 탑재돼 주행 환경에 따라 최적의 조명을 제공한다.

플로팅 루프, 조각형 테일램프, 자동 전개식 플러시 도어핸들 등 세부 디자인 요소는 차체의 입체감을 강조하며 존재감을 높였다. 특히 후면부를 전면부보다 높게 디자인해, 차량이 멈춰 있어도 달리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레인지로버 벨라 P400

실내는 고급 소재와 섬세한 마감으로 완성됐다. 대시보드 트림은 리얼 우드로 마감돼 고급스럽고, 가죽 소재의 촉감과 색감 역시 상위 모델에 준한다. 전반적인 레이아웃도 아름답다. 11.4인치 커브드 글래스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피비 프로(PIVI Pro)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인체공학적으로 배치돼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여기에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12.3인치 대화형 클러스터가 결합돼 주행 중 시선 분산을 최소화한다.

레인지로버 벨라는 단순히 ‘SUV’라는 틀 안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브랜드의 철학과 세월, 그리고 SUV의 미래가 함께 담겨 있다. 부드러움과 강인함, 품격과 실용성이 공존하는 그 균형감은 여전히 레인지로버만의 영역이다.

벨라는 도로 위의 차가 아니다. 움직이는 공간이자, 시간의 흐름마저 느리게 만드는 경험이다. 한 세대를 넘어 ‘럭셔리 SUV’라는 개념을 만들어온 브랜드의 자신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내리기 싫어지는 레인지로버 벨라의 국내 판매 가격은 9190만 원부터 시작된다.

레인지로버 벨라 P400
레인지로버 벨라 P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