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푸조에게 있어 해치백은 꽤 중요하다. 브랜드가 가장 힘들었던 1980년대, 205가 출시됐다. 디자인의 명가 피닌파리나와 협력하면서 “보수적이고 재미없는 차를 만드는 브랜드”라는 꼬리표를 떼어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5도어 해치백, 3도어, 승용 밴까지 라인업이 확장됐고, 고성능 버전인 205 GTI까지 등장했다. 205는 푸조 역사에서 결정적이었다. 그룹 B 랠리에서 강력한 성과를 내며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차가 됐다.
뒤를 이은 206의 인기는 더 컸다. ‘푸조’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바로 그 차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불모터스가 2003년 206을 들여왔고, 특히 컨버터블 모델은 데뷔 이후 2006년까지 누적 750대 이상 판매되며 ‘4년 연속 컨버터블 판매 1위’ 타이틀을 가져갔다. 당시 WRC에서도 푸조는 맹활약했고, 제조사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다.
그 이후로도 푸조는 해치백 라인업을 꾸준히 유지했지만, 205·206만큼 상징적인 존재는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시장이 SUV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해치백 수요가 줄어든 것도 뼈아팠다.
그랬던 푸조가 다시 ‘우리가 해치백을 포기한 게 아니다’라는 선언처럼 내놓은 차가 308이다. 208은 너무 컴팩트하다고 느끼는 사람, 408 같은 세단·패스트백 스타일은 취향이 아니었던 사람에게 딱 맞는 해치백. 유러피언 드라이빙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기교 없이 담백한 운전 감각이 중심에 있다. 여기에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얹어 효율성과 주행 성능까지 챙겼다.
푸조 308
푸조 308은 3기통 1.2리터 가솔린 엔진과 6단 DCT 변속기를 탑재했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더해져, 시스템 합산 최고출력은 136마력,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9초 수준이다. 공인 복합 연비는 15.2km/l다.
주행감은 예상보다 만족스럽다. 엔진의 음색이 아주 부드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불쾌한 소음은잘 정제됐다. 전기모터 개입 빈도도 높은 편이라, 엔진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저속 주행에 부족함이 없다. 저배기량 특성상 풀 액셀과 70% 정도만 밟았을 때의 체감 차이가 크지 않다.
다만 어느 정도 속도가 붙은 중고속 구간에서는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가볍고 경쾌하다. 초반 가속만 여유롭게 한다면 전혀 흡잡을곳이 없는 파워트레인이다. 아울러 정속 주행시 효율성도 주목할만하다. 국도에서는 리터당 최대 30km대를 기록했고, 고속도로 항속 주행 구간에서도 꾸준히 20km대를 유지했다.
6단 DCT 변속기도 주목할 만하다. 듀얼클러치 구조인 만큼 변속 속도는 충분히 빠르다. 그럼에도 변속 충격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수동 모드에서 패들 시프트로 변속했을 때도 개입 허용 범위가 넓어, 운전자가 의도한 타이밍에 정확히 변속이 가능하다.
승차감도 정말 만족스럽다. 독일계 해치백들이 비교적 단단한 스프링과 짧은 스트로크로 세팅됐다면, 308은 요철을 부드럽게 걸러낸다. 충격을 한 번 거른 뒤 부드럽게 가라앉는 질감이 만족스럽다. 해치백 특유의 ‘딱딱함’을 전제로 한 세팅이 아니라, 일상 주행에서도 부담을 줄인 세팅에 가깝다. 덕분에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의 피로감도 적다.
푸조 308
308의 장점은 와인딩 코스에서 더 분명해진다. 속도를 높여도 차체 거동은 불안하지 않고, 전후 하중 이동과 좌우 롤이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반복된다. 운전자가 스티어링을 꺾은 만큼 차체가 따라붙고 라인을 놓치지 않는다. 노면이 고르지 않은 구간에서도 접지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편이다.
브레이크의 성능도 준수하다. 제동력은 충분해 고속 주행 상황에서도 불안함이 없다. 다만 페달 초반 답력이 꽤 강하게 올라오는 편이라, 약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정숙성도 뛰어나다. 이중 접합 유리도 적용됐고, 차체 전반의 NVH 성능이 뛰어나, 일반적인 해치백에서 느껴지는 ‘날것’의 느낌이 없다. 실내로 유입되는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잘 억제돼 동승자와 대화하는 데 부담이 적다.
다만 거친 노면을 지날 때 스티어링 칼럼 부근에서 ‘텅’ 하고 가벼운 타격음이 들리는 구간은 있었다. 해당 부분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차체 밸런스와 주행 안정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디자인도 아름답다. 전면부는 날카롭게 세운 헤드램프와 사자의 송곳니 형상을 본뜬 주간주행등 시그니처가 인상을 강하게 잡아준다. 측면부는 긴 휠베이스 덕분에 해치백임에도 불구하고 길게 뻗은 보닛 라인과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루프 라인이 연출됐다. 덕분에 차가 시각적으로 더 낮고 더 길어 보인다. 후면부 LED 테일램프는 ‘사자의 발톱’ 그래픽을 적용했고, 좌우 램프를 시각적으로 잇는 스모크 처리 라인은 차체를 더 넓게 보이게 한다.
푸조 308
실내 공간도 생각보다 여유롭다. 기본 트렁크 용량은 412리터이며, 2열 시트를 모두 폴딩하면 최대 1323리터까지 확보된다. 60:40 폴딩 시트와 등받이 중앙에 마련된 패스-스루 기능 덕분에 긴 짐을 적재할 때도 제약이 적다.
인테리어는 푸조 특유의 ‘아이-콕핏(i-Cockpit)’ 구성이 그대로 들어간다. 작은 직경의 더블 플랫(상·하 단차) 스티어링 휠을 낮은 위치에 두고, 계기판은 대시보드 상단으로 끌어올린 레이아웃이다. 운전자는 스티어링 휠 위로 계기판을 내려다보듯 확인하게 되는데, 실제 주행 중 시선 이동이 적어 정보 확인이 빠르다.
주행 보조 시스템의 성능도 준수하다. 곡선 구간에서도 차선의 중심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했고, 조향 보조 시스템의 개입시간도 길다. 360도 파노라믹 카메라도 적용됐는데 최근 시승한 수입차 중 왜곡이 가장 적은 수준이라 시인성이 뛰어났다. 풀 LED 매트릭스 헤드라이트는 발광량이 충분해 야간 시야 확보에 유리하다. 다만 상향등 보조 시스템의 개입 빈도는 그리 많지 않았다.
푸조 308은 실제 주행에서 더 설득력 있는 차다. 일상 주행에서 답답함을 느끼기 어려운 파워트레인, 노면 충격을 깔끔하게 거르는 부드러운 승차감까지 갖췄다. 여기에 잘생긴 외모까지 품어낸 만큼, 해치백을 고려 중인 소비자라면 충분히 우선순위에 올려둘 만한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