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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로 살고, EV로 앞서간다”..적자 벼랑 끝서 다시 날아오른 포르쉐의 생존 전략

Porsche
2025-11-28 12:44
포르쉐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GTS
포르쉐,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GTS

[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자동차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동경의 대상을 꼽자면 포르쉐 911이라고 할 수 있다. 1963년 출시 이래, ‘스포츠카’의 대명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브랜드와 업계의 상징적인 모델이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재무 건전성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포르쉐는 1990년대 초반 심각한 적자에 직면했다.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수익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포르쉐가 사랑받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수익성에는 독이 됐다. 페라리·람보르기니처럼 대배기량 엔진으로 출력 경쟁을 벌이기보다, 탄탄한 섀시와 엔지니어링을 바탕으로 ‘주행의 본질’에 집중하는 ‘퓨어 스포츠카’ 지향이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 정책까지 유지하다 보니,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쓰면서도 수익을 크게 남기기 어려웠다. 포르쉐는 어디까지나 스포츠카 브랜드였고, 시장 규모가 제한된 상황에서 순수 스포츠카만으로는 고정비와 개발비를 버티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었다.

재무 위기는 수치로도 드러났다. 포르쉐는 1992년 기준 약 2억4000만 마르크, 단순 유로 환산 시 약 3053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1996년 1세대 박스터를 투입해 라인업 확대에 나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스포츠카 포트폴리오를 보완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포르쉐는 방향을 틀었다. 해법은 “라인업 확대를 통한 수익성 개선”이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2002년 등장한 4도어 SUV ‘카이엔’이다. 개발 초기에는 메르세데스-벤츠 M클래스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는 현재 모회사인 폭스바겐의 대형 SUV 투아렉을 기반으로 설계가 이뤄졌다. 전통적인 포르쉐 팬과 일부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포르쉐가 정체성을 잃었다”, “어떻게 포르쉐가 SUV를 만드느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디자인을 두고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차”라는 혹평까지 뒤따랐다.

GModell Carrera 32 Coup 1989
G-Modell: Carrera 3.2 Coupé (1989)

그러나 시장의 답은 전혀 달랐다. 카이엔은 출시 직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하며 포르쉐의 재무 구조를 뒤집어 놓았다. 브랜드 내부에서도 “포르쉐를 먹여 살린 차”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높은 수요를 기록했다.

포르쉐에 따르면, 1세대 카이엔의 누적 판매량은 27만 6652대에 달한다. 존폐 기로에 서 있던 포르쉐가 한때는 오히려 모회사인 폭스바겐그룹 인수를 추진할 정도의 체력을 갖게 될 정도였다. 지금에서야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후발주자로 SUV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포르쉐가 둔 승부수는 ‘신의 한 수’에 가까웠다.

SUV 한 대만으로 모든 리스크를 상쇄할 수는 없었다. 포르쉐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한 가지 이상 더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2009년 4도어 세단 ‘파나메라’를 선보였다. 파나메라 역시 출시 초기에는 “포르쉐다운 디자인인가”, “전통적인 2도어 스포츠카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시선 등으로 반응이 엇갈렸다.

결과는 카이엔 때와 마찬가지로 숫자가 말해 줬다. 파나메라는 고급 플래그십 세단을 지향하면서도 고성능 라인업을 통해 포르쉐 특유의 스포티한 주행 감각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1세대 파나메라의 누적 판매량은 16만 4503대로 집계됐다.

포르쉐의 방향 전환은 판매 구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911의 세부 세대별 판매량을 보면, 1세대 (1963~1973년) 8만 1100대, 2세대(1973~1989년) 19만 8496대, 3세대(1989~1993년) 6만 3762대, 4세대(1993~1998년) 6만 8881대, 5세대(1998~2005년) 17만 5262대다,

종합하면, 1963년부터 약 42년간 다섯 세대에 걸친 911 누적 판매량은 58만7501대다. 반면 카이엔(27만 6652대)과 파나메라(16만 4503대)를 합치면 44만 1155대에 이른다. 두 모델의 1세대 판매 실적만으로 911 다섯 세대 누적의 75%를 넘어서는 규모다.

포르쉐 카이엔
포르쉐 카이엔

카이엔과 파나메라의 성공 이후 포르쉐는 더 이상 ‘911 하나로 기억되는 스포츠카 메이커’가 아니다. 라인업 확대로 수익 기반을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스포츠카·모터스포츠·미래 기술 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후 포르쉐는 엔트리급 SUV 마칸까지 선보이며 포트폴리오를 넓혔고, 카이엔·파나메라·마칸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가 브랜드의 외연을 키워 왔다.

이런 포르쉐가 2019년에는 다시 한 번 큰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전기차다. 주인공은 4도어 전기 세단 ‘타이칸’이다. 출시 전후로 “천하의 포르쉐가 전기차를 만든다”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전기차 보급이 속도를 내던 시기였고,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막 열리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던 만큼, 보수적인 스포츠카 팬들의 반응은 냉담할 수밖에 없었다.

타이칸은 이런 선입견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재미없고 따분하지만 직선 가속만 빠른 차”라는 기존 전기차의 이미지를 탈피했다. 일상 주행에서는 파나메라처럼 부드럽고 정숙한 GT 성향을 보이다가,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911처럼 아스팔트를 움켜쥐고 돌아 나가는 주행 감각을 구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판적이던 이들조차 실제로 타이칸을 경험한 뒤에는 “이걸 기존의 자동차로 정의할 수 있느냐”는 반응을 쏟아냈다. 가장 고성능 버전인 ‘타이칸 터보 GT’는 최고출력 1108마력, 제로백 2.3초, 최고속도 290km/h이라는 수치를 앞세웠다. 여기에 바이작 패키지를 더하면 제로백은 2.2초, 최고속도는 305km/h까지 높아진다. 타이칸 터보 GT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7분 7초 55를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이자 4도어 세단’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포르쉐의 전동화 전략은 이처럼 고성능 이미지와 결합하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단순히 “전기차를 만든다”가 아니라 “고성능 전기차의 기준을 세운다”는 방향성에 가깝다.

Panamera Turbo S
Panamera Turbo S

포르쉐의 전동화 전략은 이처럼 고성능 이미지와 결합하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단순히 “전기차를 만든다”가 아니라 “고성능 전기차의 기준을 세운다”는 방향에 가깝다. 내연기관 시절에 그랬듯 전기차 시대에도 ‘주행 감각’과 ‘스포츠카다운 동력 성능’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구동 방식만 전기로 바꾸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최근에는 마칸 EV, 카이엔 EV 등 주력 SUV의 전동화 버전까지 선보이며 포트폴리오를 넓혀가고 있다.

포르쉐는 SUV로 수익 기반을 다지고, 전동화로 기술·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며 두 축을 동시에 확장해 왔다. 이는 고성능 브랜드들이 참고하는 ‘교과서적인’ 생존 전략으로 평가된다. 911로 정통 스포츠카 제조사에서 출발해 카이엔·파나메라·마칸으로 볼륨을 키우고, 타이칸과 전동화 SUV로 전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운전 재미를 최우선으로 둔 럭셔리 퍼포먼스 브랜드’라는 축은 유지했다는 것이다.

특히 람보르기니·페라리 역시 SUV 투입과 하이브리드·전동 파워트레인 도입 과정에서, 결과적으로는 수년 전·수십 년 전 포르쉐가 먼저 걸어간 길을 뒤따르고 있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포르쉐는 위기 때마다 라인업과 파워트레인을 과감하게 바꾸면서도, ‘운전이 재미있는 차’라는 핵심 가치를 놓치지 않은 브랜드다”며 “SUV로 수익 기반을 다지고, 전기 스포츠카로 새로운 기준을 세운 흐름을 보면, 전동화 이후 시대에도 ‘아이코닉 브랜드’ 자리를 쉽게 내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포르쉐 타이칸 터보 GT 바이작 패키지
포르쉐, 타이칸 터보 GT 바이작 패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