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단순한 한 브랜드의 플래그십이 아니다. 사실상 미국 문화를 대변하는 아이콘에 가깝다. 한때는 ‘성공의 대명사’로 통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단순히 차 한 대가 아니라 미국 자동차 업계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덕분에 대중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2001년 제니퍼 로페즈의 ‘Love Don’t Cost a Thing’ 가사에도 에스컬레이드가 등장한다. 부유한 연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소품처럼 쓰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에스컬레이드는 오랫동안 ‘부의 상징’ 역할을 해 온 셈이다.
그런 에스컬레이드가 1998년 첫 출시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았다. 바로 파워트레인이다. 반짝이는 크롬 휠과 거대한 차체, 8기통 배기음을 떠올리게 하는 풀사이즈 SUV가, 이제는 전기차로 등장했다.
당연히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이 정도 체급의 SUV가 과연 충분한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지, 내연기관 모델과 차별화된 강점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결과는 ‘기우에 가까웠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일부 브랜드처럼 보여주기식 인증 주행거리를 앞세운 전기 대형 SUV와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 주행 전비 효율도 준수했고, 정숙성과 고급스러움, 성능까지 모두 갖췄다. 파워트레인만 바뀌었을 뿐, 에스컬레이드라는 캐릭터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
에스컬레이드 IQ에는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 설립한 배터리 기업 ‘얼티움’의 205kWh 배터리가 탑재된다. 여기에 듀얼 모터가 더해져 시스템 최고출력 750마력, 최대토크 108.5kg·m를 발휘한다. 복합 기준 1회 충전 최대 주행거리는 739km 수준이다. 800V 초급속 충전 시스템을 적용해 최대 350kW 충전을 지원하며, DC 급속 충전 기준 10분 충전 시 최대 188km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정확한 평가에 앞서 체급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장은 5715mm, 전폭 2055mm, 전고 1935mm, 휠베이스는 3460mm에 이른다. 공차중량은 4210kg. 수치만 놓고 보면 ‘움직이는 건물’에 가깝다.
하지만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덩치를 잊게 된다. 체감상 중형 SUV에 가깝다.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면 완만한 토크 밴드를 타고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게 속도를 올린다. 필링 자체가 내연기관 에스컬레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전기차를 처음 접하는 운전자라도 어색함을 느끼기 어렵다.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자신들이 가장 잘 만드는 차를 전기차로 옮겨온 셈이라, 굳이 의심할 여지는 많지 않다.
발진 성능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7초에 불과하다. 4.2톤에 달하는 풀사이즈 전기 SUV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 떠올리기 어려운 수치다. 다만 최고속도가 187km/h에서 제한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체급과 출력, 차량 성격을 감안하면 다소 보수적인 세팅이다.
승차감은 에스컬레이드 이름값 그대로다.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적으로 차체를 부드럽게 떠받치고, 여기에 초당 1000회 노면을 읽어 감쇠력을 조절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이 더해진다. 차체가 워낙 크고 공차중량도 상당한 만큼 날렵하다기보다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요트에 가깝다. 이런 특성 탓에 속도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계기판을 보기 전까지는 실제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
스티어링 세팅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속 구간에서는 한층 더 무거워져도 좋을 법한데 다소 가볍게 느껴지고, 오히려 도심 저속 주행에서는 약간 무겁게 설정된 인상이다. 일상 영역에서는 큰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최고속도 리밋 인근까지 속도를 올리는 상황이라면 아쉬움이 분명히 드러난다.
정숙성은 기대 이상이다. 이중접합 유리는 요즘 웬만한 차량에 두루 적용돼 더 이상 특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에스컬레이드는 두께부터 다르다. 도어에 적용된 고무 몰딩 역시 두텁게 설계돼 있는데, 일반적인 씰이라기보다 두꺼운 고무 막대를 둘러놓은 수준이다. 이처럼 차음 구조 전반에 공을 들인 덕분에 실내에서는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잘 걸러진다. 시속 140km를 넘기기 시작하면 소음이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하지만, 체감 수준은 일반적인 차량이 시속 100km로 달릴 때와 비슷한 정도다.
에스컬레이드 IQ에는 GM의 핸즈프리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슈퍼 크루즈(Super Cruise)’가 국내 최초로 탑재된다. 현재 국내 약 2만 3000km 구간의 고속도로 및 주요 간선도로에서 사용할 수 있다. 운전자가 전방 주시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고 주행하는 ‘핸즈프리 드라이빙’을 지원한다. 교통 흐름을 인지해 차량 간 거리를 유지하고,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차선을 변경하는 기능도 갖춰 대형 전기 SUV에 걸맞은 장거리 주행 보조 성능을 제공한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눈에 띈다. 55인치 커브드 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운전 관련 정보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내비게이션이 기본 탑재되지 않아, 실사용에서는 스마트폰 프로젝션 기능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한 아쉬움이다.
사운드 시스템은 이 차량의 핵심 강점 중 하나다. 38개 스피커로 구성된 AKG 스튜디오 레퍼런스 오디오는 힘 있게 소리를 내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잘 다듬어진 음색을 들려준다. 여기에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까지 더해져, 실내 전역을 입체적인 사운드 무대로 만드는 데 집중한 구성이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
외관은 캐딜락 특유의 디자인 요소를 미래지향적으로 정리한 모습이다. 수직형 LED 헤드램프와 블랙 크리스털 실드, 일루미네이티드 캐딜락 크레스트가 전면에서 강한 존재감을 만든다. 새롭게 설계된 블레이드형 테일램프와 조화를 이루며 전기차 전용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에스컬레이드 IQ는 전동화 시대에 맞게 플래그십 SUV를 다시 정의한 모델이다. 4.2톤에 달하는 공차중량과 205kWh 배터리, 750마력 듀얼 모터 조합은 숫자만 놓고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중형 SUV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응답과 요트처럼 노면을 눌러가는 승차감을 구현했다.
두꺼운 차음 설계와 38개 스피커 AKG 사운드 시스템, 슈퍼 크루즈까지 더해져, 단순한 ‘대형 전기 SUV’를 넘어 전동화 플래그십의 방향성을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하는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