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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체급을 잊게하는 프리미엄..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Land Rover
2025-12-10 15:17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랜드로버의 재무구조를 사실상 갈아엎은 효자 차종,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상품성만 놓고 봐도 꽤 인상적인 모델이다. 짧은 오버행과 넓은 전폭이 만들어내는 풍만한 비례, 레인지로버 특유의 단단한 차체 실루엣이 결합돼 한눈에 ‘레인지로버’임을 알아볼 수 있다.

실내 역시 상위 모델들과 동일한 패밀리룩을 적용해 체급만 다를 뿐, 막상 앉아보면 상위 차종과의 격차가 크지 않다. 일부 옵션이 빠지긴 하지만, 체감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사양들은 대부분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파워트레인은 2.0리터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조합이다. 시스템 최고출력은 249마력, 최대토크는 37.2kg·m를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은 7.6초에 불과하다. 수치만 놓고 봐도 체급 대비 부족함이 없다.

냉간 시동 직후 엔진음과 회전 질감은 다소 거칠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열이 끝나고 주행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근접한 수준의 매끄러운 회전 질감과 정제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회전수를 높게 써도 소음이 거슬리지 않아 기분 좋은 주행이 가능하다.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엑셀러레이터 감각이다. 일상 주행에서 사용하는 정도로만 페달을 밟아도 차가 노면 위를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가속해 나간다. 일반적으로 터보 엔진은 저회전 영역에서 한 박자 늦게 치고 나가는 느낌이 있기 마련인데, 이보크에서는 그런 답답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디젤차에 가까운 경쾌한 초반 가속 감각에 가깝다. 고배기량 모델들처럼 묵직한 토크로 굳건히 밀어붙이는 타입이 아니라, 가볍게 쭉쭉 뻗어나가는 성격이다.

본격적인 가속은 본격적인 가속은 3000rpm 부근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토크 밴드가 워낙 촘촘한 만큼, 페달에 발을 가볍게만 올려도 바로 튀어나간다. 이에 부드럽고 여유로운 주행을 원한다면 주행 모드를 에코로 변경하길 추천한다.

승차감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쪽에 속한다. 댐퍼를 포함한 하체 세팅이 럭셔리 브랜드의 지향점에 맞춰 비교적 유연하게 잡혀 있다 보니, 차체의 움직임 폭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요철 구간이나 방지턱을 넘어갈 때도 세단에 가까운 고급스러운 감각을 선사한다. 노면 정보를 적당히 걸러내면서도, 운전자가 도로 상태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정보는 스티어링과 시트로 전달해 준다.

급격한 코너 구간에 진입하면 이보크의 진가가 드러난다. 해치백에 가까운 차체 거동을 보여주면서, 급코너에서 뒷바퀴가 스르르 흘러나가는 듯한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연출한다. SUV에서 이런 감각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레인지로버 라인업 중에서도 코너링 성능만 놓고 보면 가장 스포티한 축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제어 장치 개입 필링도 수준급이다. 과도하게 끊어내는 느낌이 아니라, 운전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필요한 순간에만 개입하는 쪽에 가깝다.

아쉬운 점은 스티어링휠의 무게감이다. 차의 성격을 감안하면 도심 주행에서는 가벼운 조향력이 장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와인딩 로드나 고속 코너링 구간에서는 조금 더 묵직한 응답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의 기본 성능과 코너링 포텐셜을 스티어링이 100% 받쳐주지 못하는 인상이다.

정숙성과 방진 성능은 수준급이다. 일상 주행 영역에서는 본닛 앞쪽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엔진음 정도만 유입될 뿐, 불쾌한 잡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다만 주행 속도가 시속 120km를 넘기기 시작하면 운전석 창문 부근에서 풍절음이 다소 들려온다.

이를 상쇄하는 요소가 바로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이다. 음질은 기대 이상이다. 입체감과 해상력이 모두 뛰어나, 주행 내내 귀가 즐겁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음악을 더 듣고 싶어 한동안 시동을 끄지 않고 앉아 있게 될 정도다. 이보크를 선택해야 할 이유를 묻는다면, 주행 감각 다음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꼽고 싶을 정도다.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디자인은 말 그대로 독보적이다. 호평이 자자했던 1세대 모델의 비례와 실루엣을 계승하면서, 디테일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쿠페 스타일 루프 라인, 플로팅 루프, 끊임없이 이어지는 웨이스트라인, 전개식 플러시 도어 핸들 등 레인지로버 이보크만의 특징적인 요소를 그대로 유지했다. 여기에 최신 패밀리룩 그릴 디자인을 더해 레인지로버 전체 라인업과의 통일감을 확보했다.

인테리어 완성도도 높다. 레인지로버 패밀리의 엔트리 모델임에도 상위 모델들과 동일한 실내 패밀리룩을 적용해, 체급을 고려하면 타협 없는 고급감을 보여준다. 간결한 센터 콘솔에는 신형 기어 시프터가 자리하고, 11.4인치 커브드 글래스 터치스크린을 통해 피비 프로(Pivi Pro)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다. 센터 콘솔은 이전보다 높게 자리 잡아 운전자와 거리를 줄였고, 그만큼 수납공간을 넓히는 한편 스마트폰 무선 충전 공간도 마련했다.

파노라믹 루프는 실내 분위기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풍부한 자연광이 실내를 채우면서, 스티어링 휠과 센터 콘솔 트림, 송풍구 등에 적용된 문라이트 크롬(Moonlight Chrome) 디테일과 어우러져 이보크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수 표면 처리를 거친 ‘테크니컬 라이트(Technical Light)’ 또는 다크 알루미늄 트림 피니셔와의 조합도 고급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레인지로버 이보크 P250

총평하자면,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디자인 보고 샀는데, 주행까지 잘하는 차’ 다. 짧은 오버행과 단단한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존재감, 상위 라인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내 완성도, 여기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가속감과 코너에서의 경쾌한 뒷축 거동까지 더해져, 체급 이상의 주행 재미를 제공한다.

물론 스티어링 무게감이 다소 가볍게 세팅돼 스포츠 드라이빙에서 아쉬움이 남고, 고속 구간에서 풍절음이 약간 늘어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정숙성, 승차감, 메리디안 오디오가 주는 ‘듣는 즐거움’까지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패키지다.

디자인과 감성, 주행 성능을 모두 중시하는 소비자라면,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여전히 한 번쯤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다.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국내 판매 가격은 7480만원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