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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프에서 아이오닉 5 N까지”.. 33년으로 완성된 고성능 ‘현대차 N’

Hyundai
2025-12-23 13:53
현대차 더 뉴 아반떼 N
현대차, 더 뉴 아반떼 N

[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현대자동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이 단시간에 정상 궤도에 올랐다. 글로벌 팬덤을 형성한 것은 물론, 내연기관을 넘어 전기차 시대의 퍼포먼스 리더로 자리 잡았다.

화려한 성공 뒤에는 30여 년 전부터 쌓아온 ‘피, 땀, 눈물’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가 오늘날 N 브랜드를 지탱하는 단단한 주춧돌이 됐다.

현대차 모터스포츠 역사의 태동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차는 독자 개발한 ‘알파 엔진’의 내구성을 증명하기 위해 ‘구름 위의 경주’라 불리는 미국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PPIHC)에 도전장을 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로드 밀렌이 이끄는 ‘스쿠프 터보’가 쇼룸 스톡 2륜 구동 부문 정상에 오른 것이다.

아반떼 스포츠
아반떼 스포츠

이는 한국 완성차 브랜드 사상 첫 국제 모터스포츠 대회 우승이라는 쾌거였다. “우리 기술로도 세계 무대에서 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한, 훗날 N 브랜드의 씨앗이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현대차는 1998년 티뷰론, 2000년 베르나(수출명 엑센트)로 WRC(월드 랠리 챔피언십)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경험 부족과 차량 트러블로 고전하다 2003년 철수라는 쓴맛을 봤다.

다시 시동을 건 것은 10년이 지난 후였다. 현대차는 2014년 WRC 재도전을 공식화했는데, 여기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뚝심은 단순 대회 참가에 그치지 않았다. 2014년부터 남양연구소와 유럽연구소에 고성능차 개발을 위한 전담 부서를 신설하며 ‘고성능차 개발 계획’을 본격적으로 재가동했다.

현대차 벨로스터 N
현대차, 벨로스터 N

아울러 브랜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당시 BMW M 연구소장이었던 ‘알버트 비어만’을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현대차 창사 이래 최초로 외국인에게 연구개발(R&D) 수장 자리를 맡긴 파격적인 인사였다. 순혈주의가 강했던 현대차 조직 문화에 던진 신선한 충격이자, 글로벌 고성능차 시장을 정조준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영입 효과는 N 브랜드 공식 출범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기아 ‘스팅어’와 제네시스 ‘G70’은 현대차그룹 차량의 주행 기본기가 비약적으로 향상됐음을 입증해냈다. 덕분에 국내외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 차가 달라졌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이러한 기술적 자신감은 2017년 ‘i30 N’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이 주도한 고성능차 개발 계획의 첫 번째 ‘공식 결과물’이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독일에서 100대 한정으로 사전계약을 시작했는데, 단 이틀 만에 완판되는 기록을 세웠다.

고성능차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i30 N이 좋은 평가를 받고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이에 현대차는 N 브랜드가 글로벌 고성능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2025 아이오닉 5 N 외장
2025 아이오닉 5 N 외장

이후 현대차는 i30 N의 성공 DNA를 이식해 2018년 국내에 ‘벨로스터 N’을 선보였다. 브랜드 상징색인 하늘색(퍼포먼스 블루)을 입고 등장한 이 차는 “국산차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찬사를 받으며 국내에도 ‘펀 카(Fun Car)’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어 등장한 ‘아반떼 N’은 뛰어난 완성도로 ‘전설의 시작’이라 불리며 강력한 팬덤을 구축했다. 비록 소형 SUV인 ‘코나 N’은 도로 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모델이 됐지만, 다양한 차종에 고성능을 접목하는 시도를 통해 귀중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남겼다.

내연기관에서 쌓은 N의 저력은 ‘아이오닉 5 N’에서 폭발했다.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했다. 통상 경쟁 전기차들은 서킷 주행 등 가혹한 환경에서 열 관리 미흡과 제동 문제로 출력이 금세 저하된다.

하지만 아이오닉 5 N은 달랐다. ‘녹색 지옥’이라 불리는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성능 저하 없이 연속 2바퀴를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용재 현대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기차를 레이스 서킷으로 가져가면 브레이크가 버티지 못하고, 배터리가 과열되면서 출력이 제한된다는 편견을 깨는 것이 개발 목표였다”고 밝혔다.

현대차 미국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대회
현대차, 미국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대회

아이오닉 5 N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차가 아니다. 가상 변속 시스템인 ‘N e-쉬프트’ 등 운전의 재미를 위한 기능들이 대거 탑재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프랭크 모저(Frank Moser) 포르쉐 911·718 라인 부사장은 최근 UAE 두바이에서 열린 페스티벌에서 “아이오닉 5 N을 여러 차례 직접 운전해봤으며, 우리에게 눈을 뜨이게 한(Eye-opening) 차량이었다”고 극찬했다.

글로벌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에 도달한 만큼, 현대차의 다음 단계는 그에 걸맞은 ‘놀이 판’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차를 잘 만드는 기술력(하드웨어)을 넘어, 고객들이 N 브랜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소프트 파워’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상 공간을 향한 현대차의 행보도 한층 적극적으로 변했다. 폴리포니 디지털이 개발하고 소니가 유통하는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는 누적 판매량 1억 장 이상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현대차 RN24 롤링랩 드리프트
현대차, RN24 롤링랩 (드리프트)

과거에도 게임 내에 현대차 모델은 있었지만, 주류 선택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최근 아반떼 N과 아이오닉 5 N, 제네시스 G70, 제네시스 쿠페 Gr.3 등 최신 고성능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유저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특히 내년 등장을 예고한 ‘아반떼 N TCR’은 현대차의 이러한 공략 의지를 잘 보여준다. 해당 차량이 속한 ‘Gr.4’ 등급은 게임 내 핵심 콘텐츠인 온라인 챔피언십(멀티플레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클래스다. 전 세계 게이머들이 승부를 겨루는 메인 무대에 전략적으로 자사 차량을 투입해, 가상 공간에서도 N 브랜드를 ‘이기기 위한 차’로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다.

현대차는 멈추지 않는다. 최근 WRC 차량의 부품을 그대로 이식한 차세대 전기차 프로토타입 ‘RN24’ 등 ‘롤링 랩(움직이는 연구소)’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미래 기술을 선제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여기서 얻은 고성능 기술과 데이터는 일반 양산차로 이어져, 현대차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33년 전 스쿠프의 무모했던 도전과 2003년 WRC 철수의 아픔, 그리고 2014년 정의선 회장의 과감한 결단은 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자산이 됐다. 현대차 N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전 세계에 ‘운전의 즐거움’을 전파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