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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상 칼럼] 미세먼지 뒤섞인 노면..최첨단 안전시스템도 무력화 ‘주의보!’

Hyundai
2025-12-24 11:50
현대차 아이오닉 6 N
현대차 아이오닉 6 N

연말연시의 도로는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공학적 시험대가 된다. 1년 중 밤이 가장 길어지는 동지(冬至)를 전후하여 가시거리는 최악으로 치닫고, 불규칙하게 쏟아지는 눈비와 미세먼지가 뒤섞인 노면은 거대한 슬러시 상태로 변한다.

이러한 불규칙한 기상 조건은 단순히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생명줄처럼 믿고 있는 자동차의 최첨단 안전 시스템마저 무력화시킨다.

최근 출시되는 고가의 신형 차량에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라이다(LiDAR)’와 ‘레이더(Radar)’ 센서가 장착되어 마치 자율주행이 모든 사고를 막아줄 것처럼 광고한다.

기아 쏘렌토
기아 쏘렌토

하지만 이 똑똑한 전자 눈들은 연말 도로의 악조건 앞에서 의외로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노면에서 튀어 오른 염화칼슘 섞인 진흙과 오염물질이 센서 표면에 얇게 코팅되는 이른바 ‘센서 블라인드(Sensor Blind)’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레이저 펄스가 굴절되거나 차단되는 순간, 시스템은 순식간에 시력을 잃고 “나는 더 이상 앞이 안 보이니 네가 핸들을 잡아라”라며 운전자에게 갑작스럽게 제어권을 던져버린다.

문제는 이 같은 제어권 전환의 찰나에 발생하는 ‘인간의 결함’이다. 연말 모임으로 인한 숙취와 동절기 특유의 계절성 피로로 인지 능력이 현격히 떨어진 운전자가, 시스템의 비상 호출에 응답해 0.5초의 찰나에 핸들을 넘겨받아 차를 통제할 확률은 공학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제네시스 G80
제네시스 G80

첨단 기술이 운전자에게 선사한 안도감이 오히려 방심을 키우고, 이것이 기상 악화와 맞물려 사고의 규모를 더욱 키우는 ‘기술의 역설’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폭증하는 연말 교통량 속에서 이러한 시스템 이탈은 연쇄 추돌이라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 교통 선진국들은 이미 인간의 의지력이나 양심에 호소하는 단계를 넘어 ‘기계적 차단’이라는 극단의 처방을 내리고 있다. 미국의 DADSS 시스템은 운전자의 호흡은 물론, 스티어링 휠이나 시동 버튼에 닿는 피부의 적외선 투과율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쉐보레 2026년형 트레일블레이저 모카치노 베이지 Mochaccino Beige
쉐보레, 2026년형 트레일블레이저 (모카치노 베이지, Mochaccino Beige)

혈중 알코올 농도가 감지되면 차는 그저 무거운 쇳덩어리가 되어 시동 자체를 잠가버린다. 일본 역시 사업용 차량 운전자가 IT 기기로 측정한 음주 데이터를 본사에 실시간 전송하지 않으면 배차 알고리즘 자체가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인간의 실수를 기계적 알고리즘으로 원천 봉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주행 전 물티슈 한 장으로 차량 전면의 레이더 패널 부근과 카메라 렌즈를 닦아내는 물리적 정성을 들여야 한다. 또한 술을 단 한 잔이라도 마셨다면, 인체의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재부팅되는 데 최소 24시간이 필요하다는 공학적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올 연말, 첨단 자동차 시스템이 술 취하고 피곤한 당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버려라.

르노 세닉 ETeck
르노, 세닉 E-Te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