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최근 30대 직장인 A씨는 중고차 시장에서 시세보다 저렴한 BMW 매물을 발견했다. 주행거리는 고작 1만km 남짓으로, 성능기록부상 ‘완전 무사고’에 소유주 변경 이력도 없는 ‘1인 신조’ 차량이었다.
횡재했다는 생각에 계약을 서두르려던 찰나, 동호회 지인의 한마디가 A씨의 발을 멈추게 했다. “연식이 좀 됐는데도 주행거리는 1만km 남짓이고, 타이어가 한국타이어네? 이거 드라이빙 센터에서 매각된 차량일 가능성도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최근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가혹하게 주행 된 시승 차량들이 일반 중고차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이른바 ‘폭탄 돌리기’ 논란이 일고 있다. 서킷을 질주하던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유통 과정에서 이 같은 이력이 고지되지 않은 채 ‘컨디션 최상’의 매물로 소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BMW M5
업계에 따르면 드라이빙 센터 출신 차량을 가려내는 결정적 단서로 먼저 언급되는 것은 타이어다. 통상 BMW의 고성능 라인업인 M 모델 등은 출고 시 미쉐린, 피렐리, 컨티넨탈 같은 고가의 수입 타이어를 장착한다. 그런데 연식과 주행거리를 감안해도 이른 시점에, 그것도 국산 타이어로 교체돼 있다면 한 번쯤 운행 이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유주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이런 타이어 조합의 어색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짧은 주행거리 안에 타이어를 갈 만큼 하드하게 몰았다면 그 자체로 차량이 상당한 주행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의미다. 아울러 조기 마모로 교체했다 해도 고성능을 중시하는 운전자가 하이엔드 수입 타이어 대신 국산 타이어를 선택할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BMW 드라이빙 센터 트랙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차량들은 2014년부터 한국타이어를 중심으로 타이어를 공급받아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연식 대비 주행거리가 짧은 신차급 M 모델에 출고 사양과 다른 한국타이어가 장착돼 있다면, 드라이빙 센터 등에서 운용된 이력이 있는지 한 번쯤 의심하고 추가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뉴 M2 출시
문제는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이다. 제조사가 직접 운영하는 인증 중고차(BPS)의 경우 해당 차량이 드라이빙 센터에서 운용됐음을 고지하고 판매한다. 소비자가 리스크를 인지하고 더 저렴한 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하는 구조여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BPS를 거치지 않거나, 재매입 과정을 통해 일반 중고차 딜러에게 넘어갈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이 단계에서 드라이빙 센터 출신 차량이라는 꼬리표는 사라지기 일쑤다. 일부 딜러들은 법인 소유였던 점을 들어 ‘1인 신조’로, 사고 이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완전 무사고’로 포장한다. 짧은 주행거리는 오히려 ‘신차급 컨디션’을 증명하는 홍보 수단으로 악용된다.
서킷 주행이 차량에 주는 부담은 일반 도로 주행과 차원이 다르다. 드라이빙 센터 프로그램 특성상 급가속·급제동·급선회(드리프트)가 반복되고, 엔진과 변속기, 브레이크는 고열에 시달린다. 하체 부싱과 서스펜션, 조향 계통에도 지속적으로 큰 하중이 걸린다. 제조사 차원에서 정기 점검과 부품 교환을 진행하더라도, 동력 계통과 섀시에 누적되는 피로도가 일반 운행 차량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정비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BMW 뉴 M3 컴페티션 투어링
이런 ‘가혹 주행’ 이력이 있는 차를 소비자가 알지 못한 채 일반 중고차로 구입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보증 기간이 끝난 이후부터 각종 고장·누유·소음이 한꺼번에 드러날 경우, 예정에 없던 수리비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된다.
이는 비단 특정 브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자동차 레저 문화가 확산하면서 서킷 주행 차량의 중고 유입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법적으로 고지를 강제하긴 쉽지 않더라도, 최소한 업계 차원에서 먼저 알리는 관행은 자리 잡아야 한다. “말 안 해도 되니 안 한다”는 태도가 이어지는 한,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과 소비자 피해는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서킷 주행 차량은 일반 렌터카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에서 운행된 특수 차량이다”며 “성능기록부에 침수차 유무를 표기하듯, 서킷 및 드라이빙 센터 등 특수 목적 운용 이력도 필수적으로 고지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