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으로 쏟아부은 돈이 1조7000억 원이다. 그런데 시장은 엉뚱하게 움직였다. 지방비가 줄자 수입 전기차 비중이 되레 높아진 지역이 나왔다. 국산차 보조금이 수입차의 3배인데도 수입 전기차가 전체 시장의 45%를 차지한다. 돈은 풀었지만 시장 구조는 바꾸지 못했다. 보조금은 수요를 자극하는 도구일 뿐, 전환의 동력은 아니다.
진짜 동력은 공공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제도만 보면 기반은 갖춰져 있다. 공공기관 업무용 차량의 100% 친환경차 의무구매, 기관장 전용차의 전기·수소차 우선 구매. 2016년 50%로 시작해 2021년 100%까지 올린 규정이다. 숫자만 보면 공공부문 전환은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인다.
EV3 GT-Line
그러나 현장에서 제도는 여러 군데서 샌다. 렌트·리스가 첫 번째 구멍이다. 직접 구매만 의무 실적으로 잡고 임차 차량은 제외하면, 기관은 내연기관차를 빌려 타면서도 의무를 채웠다고 말할 수 있다. 의무화의 본질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실제로 운행하느냐다. 법의 취지는 친환경 전환인데, 집행 기준은 회계 처리에 묶여 있다. 산업부는 2021년 렌터카 구매목표제 도입을 약속했다. 5년째 묵혀두고 있다.
두 번째는 허술한 예외다. 승합·화물·특수차는 친환경 차종이 없다는 이유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전기 승합차와 1톤 전기화물차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행정이 시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외는 좁고 엄격해야 한다. 지금처럼 넓고 느슨하면 의무화는 원칙이 아니라 선택지가 된다.
제네시스 GV60
세 번째는 아프지 않은 벌칙이다. 미달 기관 과태료는 최대 300만 원. 수억 원대 차량 예산을 굴리는 기관에 300만 원은 제재가 아니라 비용 처리다. 명단 공표도 마찬가지다. 기관별 보유 대수, 전기차 비율, 실제 운행 실적을 국민이 한눈에 비교할 수 없다면 압박은 공허하다.
해외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노르웨이는 공공 차량 조달에 탄소제로차량 100%를 의무화하면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 결과는 10년 만에 신차 판매의 85%가 전기차인 나라가 됐다. 네덜란드는 민관합동 파트너십으로 공공기관 전환을 주도했고, 영국은 정부 구매지침에 전기차 우선 원칙을 명시하며 렌트·리스 계약에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르노 세닉 E-Tech 100 Electric
공통점은 단 하나, 공공이 먼저 움직였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렌트·리스에도 전기차 의무를 적용하고, 예외 기준을 검증 가능한 수치로 좁히며, 과태료를 미달 차량 대수에 비례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기관별 실적은 국민이 비교할 수 있게 통합 공시해야 한다. 전기차 보급은 선택이 아니라 대비의 문제다. 공공이 지금 전환의 견인차가 되지 못하면, 유류 비용이 치솟는 날 허둥지둥 뒷북을 치게 된다. 보조금은 보조 수단이다. 가장 강한 신호는 정부 스스로의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