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하영선 기자] 삼성SDI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에 하이니켈(High-Nicke) NCM(니켈·코발트·망간) 소재를 기반으로 한 각형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삼성SDI와 벤츠는 배터리 공급 계약에 따라 구체적인 기간과 총 비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향후 약 10년간 총 1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이 이미 벤츠에 23조~25조원에 달하는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K-배터리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삼성SDI 하이니켈 NCM 각형 배터리는 벤츠가 향후 출시할 중소형 전기 SUV, 전기 쿠페 라인업에 탑재된다. CLA 전기차를 비롯해 A클래스, GLA, GLB 모델들이 적용 후보로 거론된다. 또 하이니켈 배터리는 순간 가속력등 출력이 뛰어난 만큼 벤츠의 고성능 브랜드 메르세데스-AMG GT 등 전기차 라인업에도 투입될 여지도 적잖다.
삼성SDI가 주력으로 삼는 하이니켈 배터리는 양극재 내 니켈 함량을 80~90% 이상으로 높인 에너지 밀도 특화 배터리로 불린다. 삼성SDI는 전통적인 NCM 외에도 알루미늄을 더한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기술력도 갖춘 상태다.
벤츠, 디 올 뉴 일렉트릭 GLB
하이니켈 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배터리 용량이 커져 전기차 모델에 따라 1회 충전 주행거리를 800~1000km 이상 등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건 강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하이니켈 소재는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하는 고출력 특성이 우수해, 가속 성능이 뛰어난 고성능 전기차에도 적합하다.
또 제조사 입장에서는 가격 변동성이 크고 비싼 코발트(Co) 비중을 낮추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니켈 비중을 높인다는 점에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다. 중국계 배터리사가 주로 공급해온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대비 겨울철 저온 환경에서도 전압 강하가 적고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차별적 포인트다.
하이니켈 배터리는 다만 니켈 함량이 높아지면 화학적 불안정성이 증가해 고온 노출 시 갑작스런 화재나 폭발 위험(열폭주)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SDI는 특수 코팅 기술과 알루미늄 소재(NCA)를 활용해 열화를 최소화하고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벤츠가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에 삼성SDI의 하이니켈 각형 배터리를 선택한 배경에는 삼성SDI의 기술적 신뢰도와 전략적 이해 관계가 맞물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BMW, 7시리즈
벤츠는 그동안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사용해왔으나, 차세대 모델에서는 안전성이 높은 '각형' 배터리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구사한다.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는 단단한 알루미늄 캔 외관 덕분에 충격에 강하고, 가스 배출 장치(Vent) 등 화재 방지 설계가 우수하다는 점도 한 이유로 꼽힌다.
벤츠는 지난 2024년 8월 인천 청라지역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 EQE 350 전기차에서 열폭주로 인한 화재가 발생, 약 140여 대의 차량이 전소되거나 파손돼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당시 배터리 공급사는 중국의 파라시스(Frasis)사였다.
한국 전기차 시장은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약 1년 5개월간 전기차 캐즘 등으로 전기차 판매가 곤두박질 쳤지만, 올해 들어 3월까지 누적 전기차 판매 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하는 등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향후 전기차 시장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한다.
벤츠가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삼성SDI와의 잇따른 다년간 대규모 배터리 공급 계약 체결을 맺은 건 한국 시장에서 벤츠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를 되찾으려는 숨은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네시스 G90
삼성SDI가 보수적인 부품 채택 성향을 지닌 벤츠에게 다년간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벤츠로부터 '메인 공급사', '검증된 파트너'로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지난 10여년간 전기차 배터리의 기술력을 증명했던 BMW와 아우디 등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이끄는 독일 프리미엄 3사 모두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된 건 삼성SDI 입장에서는 하나의 '변곡점'으로 평가 받는다.
다만, 삼성SDI는 이상하게도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브랜드 등 현대자동차그룹과는 '인연'이 적은 쪽이다. 이 같은 배경엔 삼성그룹 산하 삼성자동차가 지난 1998년 중형 세단 SM5를 선보인 이후, 국내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연간 10만대 이상 판매하는 등 당시 현대차 쏘나타, 기아 크레도스 등을 압도한 때문이 아니냐는 우스겟 소리도 나온다.
삼성SDI는 현대차의 소형 전기 SUV '코나 일렉트릭'에 배터리를 제한적으로 공급한 경험이 있다. 앞으로는 제네시스 G90 전기차, 기아 EV2 등에도 배터리를 공급하게 된다. 삼성SDI가 이번 벤츠와의 배터리 공급 체결에 이어 향후 현대차그룹과의 협력 체계가 더욱 공고화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주목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