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박경수 기자] 유럽 자동차 산업의 상징인 폭스바겐그룹이 결국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수요 둔화와 전동화 전환 부담이 겹치면서 대대적인 생산 축소에 나선 것이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독일 경제지 인터뷰에서 “현재의 과잉 생산능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며 “글로벌 시장 상황을 반영해 최대 100만대 규모의 추가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폭스바겐그룹은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다. 이들 브랜드를 모두 합친 글로벌 생산능력은 2019년 약 1200만대에 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중국과 유럽 시장 위축으로 각각 약 100만대씩 줄어든 상태다. 여기에 추가 감축이 이뤄질 경우 전체 생산능력은 약 900만대 수준까지 내려가게 된다. 불과 몇 년 사이 25% 가까이 줄어드는 셈이다.
실제 판매도 감소세다. 폭스바겐그룹의 글로벌 인도량은 2019년 1097만대에서 지난해 898만대로 크게 줄었다. 블루메 CEO는 “팬데믹 이후 시장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900만대 수준이 새로운 평균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폭스바겐 신형 티록
문제는 감축 방식이다. 회사 측은 당장 공장 폐쇄를 단행하기보다는 다양한 비용 절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다. 이미 폭스바겐은 독일 내 공장 10곳 가운데 2곳의 생산을 중단하고, 2030년까지 최대 5만명을 감원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공장은 전혀 다른 용도로 전환되고 있다. 자동차 생산을 멈춘 드레스덴 공장은 드레스덴공대가 활용하는 인공지능(AI)·로봇 연구 캠퍼스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또 오스나브뤼크 공장은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 등이 인수를 검토하는 등 자동차 공장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폭스바겐 2대 주주인 니더작센 주정부는 최근 중국 업체와의 합작을 통해 기존 공장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단순한 경기 대응을 넘어 구조적 변화의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전환에 따른 투자 부담, 중국 시장 경쟁 심화, 유럽 내 수요 둔화가 동시에 압박하면서 기존 대량 생산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더 이상 생산 규모 확대에 집착하지 않고 수익성과 효율성 중심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며 “폭스바겐의 감산 결정은 그 전환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