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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공식 깨졌다”..브랜드 헤리티지 녹아든, 럭셔리 전기차들의 색계(色計)

Genesis
2026-05-15 13:56
제네시스 GV60 마그마
제네시스, GV60 마그마

[데일리카 하가연 기자] 국내 자동차 시장이 오랜 ‘무채색 강박’을 깨고 화려한 컬러 옷을 입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그동안 국내 시장은 흰색, 검정, 회색 등 무채색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해왔다. 중고차 잔존 가치를 우선시하는 실용적 소비 성향과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보수적 취향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차량 가격이 높을수록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무채색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장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동화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자동차 무채색의 패러다임이 전면 수정되고 있다. 내연기관의 엔진 소음과 진동이 사라진 자리를 높은 정숙성과 첨단 소프트웨어가 대체했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개인의 개성과 기술력을 표현하는 ‘움직이는 디자인 오브제’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컬러’가 꼽힌다. 하이엔드 전기차 브랜드를 중심으로 과거 기피 대상이었던 강렬한 유채색과 정교한 비스포크(맞춤형) 컬러 도입이 한창이다. 이는 브랜드의 철학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경쟁사와의 차별점을 부각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제네시스의 고성능 트림 ‘마그마(Magma)’는 브랜드 고유의 ‘역동적인 우아함’에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더하며, 그 정체성을 ‘주황(오렌지)’ 컬러로 정의했다. ‘GV60 마그마 콘셉트’ 등에서 공개된 이 컬러는 지각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용암의 에너지를 형상화한 결과물이다.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제네시스가 지향하는 고성능 전기차의 열정과 기술적 자신감을 상징한다는 평가다.

마그마의 오렌지 컬러는 차체의 공기 흡입구(에어 인테이크) 및 와이드한 펜더 디자인과 결합해 시각적인 팽창감과 속도감을 동시에 구현한다. 실내 디자인 역시 고성능 감성을 충실히 반영했다. 스포티한 버킷 시트와 스티어링 휠, 안전벨트 등에 적용된 오렌지 스티치는 운전자에게 차별화된 심리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제네시스는 이 같은 컬러 마케팅을 통해 정제된 프리미엄 이미지에서 강력한 퍼포먼스 브랜드로의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다.

로터스 엘레트라
로터스 엘레트라

로터스는 하이엔드 전기차 시장에서 컬러 마케팅을 가장 공격적으로 펼친다. 브랜드의 핵심 전기차 라인업인 하이퍼 GT ‘에메야(Emeya)’와 하이퍼 SUV ‘엘레트라(Eletre)’는 로터스가 축적해 온 모터스포츠 유산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다. 로터스를 상징하는 강렬한 옐로와 딥 그린은 단순한 화려함을 넘어, 과거 레이싱 트랙을 호령했던 ‘로터스 레이싱 컬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에메야는 매끄러운 패스트백 실루엣에 선명한 유채색을 입혀 공기역학적 조형미를 극대화했다. 공기 흐름을 제어하는 액티브 에어로 파츠와 날렵한 캐릭터 라인은 유채색과 결합할 때 입체감이 한층 살아난다는 말이 나온다.

엘레트라 역시 SUV 특유의 무거운 부피감을 경쾌한 컬러로 상쇄하며 ‘달리는 즐거움’이라는 브랜드 본질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실내 공간 또한 외장색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트 스티치, 안전벨트, 카본 파츠 디테일을 적용해 안팎의 통일감을 완성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구축했다.

마세라티 그란 카브리오 폴고레
마세라티 그란 카브리오 폴고레

마세라티의 전동화 라인업 ‘폴고레(Folgore)’는 이탈리아 특유의 우아함과 세련미를 감각적인 컬러로 풀어내고 있다. 고성능 전기 컨버터블 ‘그란카브리오 폴고레’는 원색의 강렬함 대신 눈이 편안하면서도 깊이감이 느껴지는 파스텔 톤을 전면에 내세웠다. 지중해 바다를 닮은 블루, 따스한 햇살 아래의 모래사장을 연상시키는 베이지와 아이보리, 로즈 골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컬러 전략은 전기차 전환기 속에서도 마세라티 고유의 ‘그랜드 투어러(GT)’ 감성을 고수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루프를 개방했을 때 외장 컬러와 실내 인테리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어우러지도록 설계된 점은 차별적이다. 가죽 시트의 질감부터 헤드레스트에 새겨진 삼지창 로고의 색상 디테일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컬러 매칭은 전기차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이탈리안 럭셔리의 정수를 보여준다.

롤스로이스 스펙터 블랙 배지
롤스로이스 스펙터 블랙 배지

롤스로이스에 컬러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닌 고객과 함께 완성하는 ‘창작의 영역’이다.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 쿠페 ‘스펙터(Spectre)’는 수만 가지 이상의 색상 조합이 가능한 비스포크(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동차를 구현해 낸다. 고객은 개인적인 기억 속 특정 순간이나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의 색감을 차량에 그대로 투영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의 도장 공정은 일반적인 도색과 궤를 달리한다. 빛의 각도에 따라 색조가 변하는 특수 도료와 장인의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코치라인은 스펙터를 하나의 움직이는 조각상으로 격상시킨다. 실내 공간은 최고급 가죽과 목재는 물론, 천장을 수놓는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 조명까지 모든 요소의 색상을 맞춤형으로 제작한다. 이는 전기차 시대에도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럭셔리’의 본질을 증명하며, 컬러를 통해 차량의 가치를 무한대로 확장하는 롤스로이스만의 독보적인 방식이다.

포르쉐는 독창적인 컬러 전략을 통해 자사의 뿌리인 모터스포츠 DNA를 전기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이식하고 있다. 고성능 순수 전기차 타이칸의 ‘바이작 패키지(Weissach Package)’ 등에서 선보인 보라색 계열의 포인트 컬러가 대표적이다. 이는 과거 전설적인 레이싱카들이 입었던 역사적 컬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로, 정지 상태에서도 달리고 있는 듯한 역동적인 이미지를 구현한다.

포르쉐 타이칸 터보 GT 바이작 패키지
포르쉐 타이칸 터보 GT 바이작 패키지

포르쉐의 컬러 마케팅은 차체 전체를 덮는 도장을 넘어 로고, 브레이크 캘리퍼, 휠 림 등 미세한 디테일까지 파고든다. 실내 계기판의 그래픽 색상과 안전벨트 배색까지 정교하게 통일시키는 치밀함은 운전자가 마치 레이싱 머신의 콕핏(운전석)에 앉아 있는 듯한 감각을 일깨운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장식을 넘어, 브랜드의 승리 기록과 기술적 유산을 컬러라는 언어로 일상에 전달하는 고도의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전동화 시대의 도래는 자동차를 단순한 기능적 도구에서 감성적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내연기관 특유의 복잡한 메커니즘이 생략된 자리에 디자인과 컬러가 핵심 가치로 급부상한 결과다.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유채색과 비스포크(맞춤형) 컬러에 집중하는 이유 역시 그것이 브랜드의 철학을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자동차 색상은 더 이상 중고차 감가상각을 우려해 타협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다”며 ”“나만의 확고한 취향을 드러내고 브랜드의 유구한 헤리티지를 일상에서 향유하는 가장 능동적인 표현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네시스 GV60 마그마
제네시스, GV60 마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