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전기차의 큰 단점은 내연기관 대비 짧은 주행거리와 긴 충전 시간으로 인한 번거로움을 꼽을 수 있다. 이 같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선 에너지 밀도가 높은 전고체 배터리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에 한국과 일본이 양자구도를 형성해 수년 전부터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전념하던 중 막대한 자본을 품은 중국이 뛰어들어 세간의 관심이 주목된다.
전고체 배터리란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해질이 고체로 된 차세대 2차 전지다. 고체 전해질의 종류에 따라 황화물계(Sulfide), 산화물계(Oxide), 폴리머계(Polymer)로 나뉜다. 이 중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가 안정성도 가장 우수하고, 효율도 좋아 양산화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차세대 전지가 상용화돼 전기차에 탑재된다면, 화재·폭발 위험도 대폭 줄어들고 기존 배터리 대비 주행거리가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일명 국내 ‘K 배터리’ 3사로 불리는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을 비롯해 일본은 수십조 원을 들여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개발을 이어왔다.
한국에서는 삼성SDI가 독보적인 모습을 보인다.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독자적 무음 극 기술과 업계 최고 수준인 900Wh/L 에너지 밀도를 기반으로 시제품 생산에 나선 만큼 사실상 전고체 배터리 업계 선두 주자나 다름없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 SDI의 전고체 배터리 샘플은 성능과 안정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전했다. 다른 국가보다 1~2년가량 앞선 만큼, 상용화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일본의 경우 토요타가 개발에 나선다. 1955년부터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권을 확보해 풍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이데미츠 코산과 컨소시엄을 구축해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에 나선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은 전고체 배터리가 전기차에 장착될 경우, 충전 시간이 10분 이내, 항속거리 약 1200km의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한다. 닛산도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요코하마 공장에 전고체 전지 생산 라인을 공개하고 내년 3월에 시험 생산에 나선다.
하지만 최근 저렴한 가격의 LFP(인산철)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어 진형이 바뀌었다. 중국은 전고체 개발을 위해 전기차·배터리 업체와 정부 기관 등이 참여한 협동 혁신 플랫폼(CASIP)을 출범했다. 전폭적인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선보인 컨소시엄인 만큼, 2030년까지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을 목표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중국의 이런 공격적인 행보의 이면엔 LFP(인산철) 배터리가 있다. 과거 삼성과 LG가 막대한 자본을 들여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뛰어난 에너지 효율이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수명도 짧고 폭발 위험이 있어 차세대 전지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렴한 제조 원가 탓에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전기차의 대명사인 테슬라 또한 해당 배터리를 탑재했으니 말이다.
실제 블룸버그 컨센서스에 따르면, LFP의 대표 주자인 CATL의 올해 매출은 4253억 위안, 영업 이익은 570억 위안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전년 대비 각 6%, 25%가 증가한 수치다. 누군가는 혁신이라며 손을 치켜세우지만, 그 내막에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배터리’라는 어두운 속내가 자리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제품이 아니다. 이에, 국내 업체들이 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이유는 ‘재활용’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전기차는 ‘친환경’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선 ‘폐기된 배터리의 재활용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서 사용 중인 배터리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NCM과 NCA 배터리의 경우 니켈과 코발트 등의 고가 광물이 포함돼 있어 재활용 시 부가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LFP 배터리의 경우 저렴한 가격표를 달고 있는 만큼 재활용 시 뽑아낼 수 있는 부가가치가 미비하다. 재활용에 투입되는 비용보다 재활용 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어, 사실상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에선 폐기된 대부분의 LFP 배터리를 매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친환경과는 상반된 행보다. LFP 배터리를 주로 사용하는 중국 시장 내 전기차 판매량은 800만대에 달한다. 이는 전년 대비 30%가량이 증가한 수치다. 전기차 한 대에 장착되는 배터리는 500kg 남짓이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히 계산해 보면, 연간 400만 톤에 달하는 폐배터리가 땅속에 묻히는 참사가 발생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시장은 여전히 ‘저렴한 가격’을 외치고 있다. 경기 침체의 여파가 전기차 시장에도 미치고 있는 모습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국내 배터리 업계에 경의를 표한다. 정부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몸집을 불리는 중국을 이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이 몸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K-배터리’로 다시 한번 증명해 내길 기대한다.
김경현 기자khkim@daily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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