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기는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이로 인해 내연기관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급차 선호 현상이 전기차 시장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전기차를 구매할 때조차 ‘큰 차’, ‘비싼 차’, ‘유명 브랜드’가 주요 선택 기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소비 패턴이 지속된다면 정부가 설정한 2030년 무공해차 450만 대 보급 목표는커녕, 절반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무공해차 등록 대수는 약 60만 대 수준이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매년 60만 대씩 새로 보급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연간 20만 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30년까지 약 150만 대 보급에 그칠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판매량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 인식, 정부 정책, 제조사의 전략이 모두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아 EV9
고급차 선호는 단순한 취향이 아닌 ‘차=사회적 지위’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2023년 국내 수입차 판매 상위 10개 모델 중 절반 이상이 8,000만 원 이상의 고가 차량이었다. 전기차 시장도 테슬라 모델 Y, 메르세데스-벤츠 EQS, BMW iX 같은 고가 모델이 초기에 시장을 장악했다.
게다가 정부의 초기 보조금 정책이 고가 전기차 소비를 부추긴 것도 한몫했다. 가격과 관계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다 보니 고급 전기차 구매자들까지 혜택을 받아, ‘고급 전기차=가성비 좋은 선택’이라는 왜곡된 소비 패턴이 만들어졌다.
반면, 해외 시장은 정반대 흐름을 보인다. 테슬라는 2023년부터 가격 인하 전략으로 모델 3와 Y의 가격을 최대 20%까지 내렸다. 중국의 BYD는 일본보다 1,000만 원 저렴한 가격으로 ‘아토 3’를 한국 시장에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더 뉴 EQS 450 4MATIC SUV
유럽에서는 볼보 EX30, 푸조 e-2008 같은 소형 SUV 전기차들이 합리적인 가격대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대중화의 선두주자로, 2023년 기준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가 1,350만 대에 달한다. 저가 모델부터 중형 SUV까지 다양한 보급형 라인업이 성공의 열쇠였다.
유럽도 르노 조에, 피아트 500e 같은 3,000만~4,000만 원대 모델들이 전기차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현대차의 ‘캐스퍼 일렉트릭’과 기아의 ‘EV3’ 같은 보급형 모델이 인기다. 특히 캐스퍼 일렉트릭은 보조금과 할인 혜택을 적용하면 2,000만 원대 후반에 구매할 수 있다.
소비자들도 이제 브랜드보다 가성비를 따지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충전 인프라 부족, 배터리 화재 우려, 낮은 중고차 가격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여기에 경기 침체와 고금리, 물가 상승까지 더해지면서 전기차가 여전히 ‘사치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BMW, i7 M70 xDrive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가격 인하가 아니다. ‘전기차는 탄소중립을 위한 경제적인 교통수단’이라는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정부도 보조금 정책을 개편해 차량 가격이 아닌 주행 거리, 에너지 효율성, 배터리 안전성 등 실질적인 환경 기여도를 기준으로 지원해야 한다.
2030년 무공해차 450만 대 보급 목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테슬라 모델3, 모델Y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 (전 수소경제위원회 위원)carn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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