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그랜저 TG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故 정세영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차의 핸들을 잡게 된 정몽구 회장의 첫 ’그랜저’였던 만큼 파격적인 변화가 이뤄졌다.
전반적으로 세련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담아냈다. 전형적인 3박스 스타일에서 벗어나 곡선미 넘치는 차체의 라인과 널찍한 휀더는 스포티한 인상을 선사했다. 전작 XG 대비 거대해진 차체(전장 4895mm(XG 대비 +20mm), 전폭 1850mm(+25mm), 전고 1490mm(+70mm), 축거 2780mm(+30mm))를 품었음에도 트랜드에 발맞춘 디자인을 선보인 것이다.
실내 디자인은 파격적이었다. 그중 백미를 꼽자면 일체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기존 국산 차들과 대부분의 수입차는 오디오 유닛을 모듈화시켜, 자사 차량 간 공유해 원가를 절감했다.
하지만 그랜저에 탑재된 시스템은 옵션에 따라 내장재를 구분해 제작해야 했으며, 오디오 시스템과 공조기도 내장재 일체형으로 ’그랜저 전용’으로 개발된 만큼 현대차의 집념이 묻어났다.
개발 당시 렉서스 ES를 벤치마킹했다는 풍문도 들렸었는데, 실제 당시 많은 자동차 매체는 그랜저 TG와 렉서스 ES를 비교 시승기를 작성한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에쿠스와 수입차에 준하는 옵션들이 가득했고, 멋들어진 디자인과 더불어 정숙성과 승차감도 뛰어났다. 전륜에는 더블 위시본, 후륜에는 멀티 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을 장착한 만큼, 전작 대비 단단한 승차감도 돋보였다.
대중들은 열광했다. 당시만 해도 그랜저는 상류층을 대변했기에, 상품성과는 별개로 ‘이름값’만 보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TG는 달랐다.
상품성도 출중했고, 회춘 수준으로 환골탈태한 디자인 덕분이다. 당시 일상을 포기하고 그랜저를 택하는 사람을 칭하는 ‘그랜저 타는 거지’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할 정도였다. 사실상 대한민국 1세대 ‘카푸어’ 양산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높은 인기는 판매량의 고공행진으로 이어졌다. TG가 출사표를 던진 지 19개월 만에 14만 1083대를 팔아치우며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전작인 XG의 7년간 총판매량인 30만여대의 절반 가까이에 달한다.
2006년 기준 LPG 차량을 제외한 NF쏘나타의 판매량은 6만 5000대였는데, 동일한 조건 그랜저 TG의 판매량은 6만 5755대로 대형 승용차 판매량이 중형차를 추월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높은 판매량의 배경으로는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마련해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늘린 점도 한몫했다. 염가형 모델인 4기통 2.4 가솔린 엔진부터 264마력을 자랑하는 6기통 3.8 가솔린 엔진이 마련된 만큼 독보적인 상품성을 자랑했다.
그중 가장 낮은 판매량을 기록했던 라인업은 최고급형 6기통 3.8 엔진이 탑재된 S380이었다. 전동으로 높이 조절이 가능한 페달부터 슈퍼비전 클러스터, DVD 기능, 메모리 시트, 후면 유리 블라인드, 밝기 조절 사이드미러와 후방 카메라가 탑재돼 수입차를 앞서는 편의 기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차량의 가격이 4006만원에 달했던 만큼 진입장벽이 높았다. 특히 에쿠스의 기본형 모델의 가격이 4589만원이었던 만큼 굳이 최고급 트림을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라인업은 염가형 4기통 2.4 엔진이 탑재된 Q240이었다. 기본형 사양이었던 만큼,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2513만원으로 자동변속기가 탑재된 NF쏘나타 2.0의 기본 모델 1895만원, 최상위 모델 2470만원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이에 대부분의 소비자가 Q240을 구매했다. 국민차인 쏘나타를 구입할 돈에 조금만 보태면, 성공의 대명사인 그랜저를 손에 쥘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의 시대상은 광고에서도 묻어났다. 30초 남짓한 광고에는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사회적 화두에 오를 정도였다.
오늘날 그랜저는 시대에 발맞춰 변화했다. ’아빠 차’에서 ’오빠 차’로, ’성공의 대명사’라는 타이틀은 과거의 아성 대비 약해졌으며, 국산 차 왕자의 자리 또한 후손인 제네시스에 내줬다.
그럼에도 그랜저는 여전히 차급을 상회하는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되, 수입차에 견줘도 절대 뒤지지 않는 상품성을 가졌다. 자동차를 향한 국내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높이는데 톡톡한 해낸 그랜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경현 기자khkim@dailycar.co.kr
클래스가 다른; 자동차 뉴스 채널 데일리카 http://www.dailycar.co.kr 본 기사를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밝히셔야 하며 기사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