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배터리의 원형으로 꼽히는 볼타전지는 무려 1800년에 개발됐습니다. 하지만 배터리의 역사는 그깟 200년 정도가 아닙니다. 배터리가 인류 역사에 등장한 건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 사이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무려 2000년 훨씬 이전부터 배터리 역사가 시작됐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추정이 가능한 건 지난 1932년 여름 이라크에서의 놀라운 발견 덕분입니다. 당시 수도 바그다드 근교에서는 이라크 국립박물관의 고고학자들을 중심으로 유적지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매우 특이한 구조를 가진 높이 14cm의 진흙 항아리들이 나왔습니다.
■ 최초의 배터리는 2000년 전에 있었다
바그다드 전지 모형 (삼성SDI 제공)
항아리는 성인이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아담했습니다. 그런데 주둥이 부분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일단 중앙에는 직경 1cm의 철심이 박혀 있고, 그 철심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구리 테두리가 보였습니다.
이 주둥이는 천연 아스팔트를 가공해 만든 흑갈색의 타르, 즉 역청을 발라 단단하게 밀봉돼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독특한 항아리의 용도를 확인하기 위해 역청을 뜯어냈고, 항아리 안에는 철심을 담은 구리 원통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원통의 크기는 직경 2.6cm에 길이 10cm 정도였으며, 그 원통 안에는 직경 1cm, 길이 7.5 cm의 철심이 박혀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이라크 국립박물관의 빌헬름 쾨니히(Wilhelm König) 유물관리자는 항아리의 구조가 배터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발굴될 당시 철심의 모양이 매우 특이했기 때문입니다.
수십 세기 동안 묻혀 있던 철심이라면 녹이 슬어야 하지만 항아리의 철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아리 안에 마치 철을 녹일 정도로 산성도가 높은 용액이 담겨 있었던 것처럼, 철심이 산에 의해 부식된 형태를 보였습니다.
1930년대는 이미 배터리가 양극, 음극, 전해질로 구성된다는 것이 알려졌던 시기입니다. 또한 두 금속의 전위차(전기적 위치에너지의 차이)로 전기가 발생된다는 배터리의 기본 원리 정도는 이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쾨니히는 이런 기본 정보를 가지고 바그다드 유적지에서 나온 항아리가 배터리의 역할을 했으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항아리에 '바그다드 전지(Baghdad Battery)'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련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며 유물이 출토된 곳이 이라크의 '파르티아 왕조'의 유적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바그다드 전지는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 사이 파르티아 왕조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의미지요.
연구자들은 바그다드 전지가 도금용, 혹은 통증 완화를 위한 침습용 또는 주술적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건 도금용으로 쓰였다는 가설입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재현 실험을 진행한 결과, 양극의 역할을 하는 구리판과 음극의 역할을 하는 철심, 식초나 와인 전해질로 만든 배터리에 전류가 흐르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 전기를 활용해 도금하는 것을 전해도금 방식이라고 합니다. 도금할 물체를 도금액 안에 담그고 직류 전류를 흘려 보내면 표면에 얇은 금속막이 형성되는데,이를 통해 은이나 금을 도금할 수 있습니다.
■ 보석과 포병부대에서 기원하다
여러 개의 라이덴병을 모아 만든 전기 배터리 (삼성SDI 제공)
한자어로 전지(電池)란 ‘전기를 담은 연못’입니다. 그럼 배터리(battery)는 어떤 뜻이 있을까요? 전기와 관련이 있을까요? 이번에는 배터리와 전기(electricity)의 어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류는 언제부터 ‘전기’라는 현상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을까요? 고대 그리스의 귀부인들은 엘렉트론(elec-tron)이라고 부르는 호박을 장식품으로 애용했습니다. 호박은 지질 시대의 나무 진액이 땅속에 묻히면서 만들어진 누런색의 유기물질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보석과 달리 불에 타기 쉽고, 문지르면 마찰에 의해 정전기가 생겨 주변의 가벼운 물질을 끌어당깁니다. 사람들은 먼지가 묻은 호박을 모피로 문질러 닦는 과정에서 정전기(static electricity)를 경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호박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는 이 현상은 2000여 년 동안 풀리지 않는 궁금증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길버트(Willian Gilbert)가 전기와 자기를 연구하다 호박에서 나타나는 전기 현상에 엘렉트리쿠스(electricus)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전기(electricity)의 어원이 된 것입니다.
■ 배터리의 어원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1729년 영국의 스테판 그레이(Stephen Gray)는 전기가 잘 전달되는 도체와 전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 부도체를 발견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실험을 통해 전기가 선을 타고 움직인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1746년, 네덜란드의 피터르 판 뮈스헨브룩(Pieter van Musschenbroek)이 '전기를 담을 수 있는 병', 배터리를 발명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뮈스헨브룩이 만든 배터리는 '라이덴병(Leyden jar)'으로 불렸습니다. 라이덴병은 유리병 안팎에 금속을 입힌 병으로, 코르크와 같은 절연 물질로 만든 뚜껑에 구멍을 뚫어 금속 대롱과 쇠사슬을 달아 유리병 바닥에 닿게 둡니다.
라이덴병이 전기를 모으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경험해봤던 정전기 실험을 떠올리면 됩니다. 유리 막대를 헝겊으로 문질렀을 때 정전기가 발생하는 것을 한번쯤 실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유리 막대를 헝겊으로 문지른 직후 이를 바로 금속 대롱에 갖다 대면 발생한 정전기가 쇠사슬을 타고 유리병 안 주석판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정전기를 모아 가두는 배터리 역할인 것이지요.
여기서 전기의 흐름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리 막대에 있던 양(+)의 전하가 금속 대롱과 쇠사슬을 타고 유리병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때 유리병 안쪽 주석판에는 양(+)의 전기가 생기고 바깥쪽 주석판에는 음(-)을 전기가 생깁니다. 이렇게 전하가 유리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끌어당기게 되므로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합니다. 자연스럽게 전기가 병 안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라이덴병은 엄청난 물건이었습니다. 전기를 가둔 라이덴병의 금속 대롱에 도체를 갖다 대면 전기가 흐르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직접 라이덴병을 만들겠다고 나섰고, 그 중 한 명이 미국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자 피뢰침의 발명가로 알려진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유럽에서 라이덴병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재현 실험에 참여했고, 본격적으로 전기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1752년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그는 라이덴병을 들고 번개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직접 번개로 라이덴병을 충전하는 실험을 하여 번개도 전기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입증했습니다. 이후엔 번개의 전기에너지를 땅속으로 흐르게 하는 피뢰침을 발명합니다.
알렉산드로 볼타가 발명한 볼타의 전지 (삼성SDI 제공)
전기공급장치 혹은 전기를 담은 장치라는 뜻의 배터리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입니다.그는 라이덴병을 직렬로 연결해 전기용량을 늘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주로 라이덴병 네 개를 한 묶음으로 사용했는데, 프랭클린은 이 묶음을 '배터리(battery)'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프랑스어로 ‘때리다’는 뜻의 바트르(batter)에서 시작된 바트리(batterie), 즉 배터리는 포병부대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라이덴병 묶음이 포병부대와 같은 기능을 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배터리라는 단어에 전기 공급장치라는 의미가 추가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됐네요.
■ 볼타전지, 배터리의 원형이 되다
지난 1786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생물학자이자 해부학 교수였던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는 죽은 개구리를 구리판 위에 올려놓고 나이프를 가져다 댔을 때, 개구리의 다리가 움찔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개구리를 구리철사에 매단 후 나이프를 갖다 댈 때도 똑같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이 실험을 정리해 논문을 썼고, 동물의 근육에는 '동물전기'라고 부르는 생명의 기가 있으며 금속으로 근육이나 신경을 건드리면 이 전기가 작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791년 ‘전기가 근육운동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고찰’이라는 갈바니의 논문이 세상에 나오고 많은 사람이 개구리 실험에 동참했습니다. ‘배터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레산드로 볼타(Alessandro Volta)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볼타는 정규 대학은 다니지 않았지만 이미 전기 분야에서 명성이 있었으며, 젊은 나이에 실험물리학 교수로도 활약하고 있었습니다.그는 갈바니의 논문을 읽고 동물전기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배터리의 발전사 (삼성SDI 제공)
구리판이 아니라 철로 된 판에 개구리를 올려놓고 실험을 했더니, 개구리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볼타는 개구리의 다리를 움직이게 한 전류는 동물전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금속 때문에 생긴 전류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배터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볼타전지(Voltaic pile·Voltaic cell)’입니다.
볼타전지는 아연과 은(혹은 구리), 그리고 소금물에 적신 종이를 쌓아 올린 형태입니다. 이는갈바니가 두 개의 다른 금속과 개구리의 체액을 이용한 것에서 기본 구성을 가져온 것이었고, 볼타는 자신의 모형에서 전기가 흐르는 것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까지 이용되는 모든 금속과 전해질을 이용한 배터리의 기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볼타는 배터리의 원형을 만들 수 있었으며, 더불어 전기가 통하기 위해서는 양극, 음극, 전해질의 역할을 하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배터리, 진화를 거듭하다
앞서 볼타가 만든 최초의 배터리는 양극, 소금물에 적신 종이, 음극을 쌓아 올린 더미였기 때문에 부피와 무게가 상당했습니다. 더불어 실제 사용을 해보면 전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로 인해 배터리 산업으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볼타전지의 결점을 보완하고 화학전지를 실용화한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존 프레더릭 다니엘(John Frederic Daniell)입니다. 다니엘전지는 볼타전지가 발명된지 20년 뒤에 만들어졌습니다. 양극, 음극의 금속은 같지만 두 개의 극을 분리해 섞이지 않게 하고, 양극과 음극의 전해질을 따로 사용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음극에는 황산아연 용액, 양극에는 황산구리 용액을 사용했으며, 두 전해질 사이는 염다리(salt bridge)로 연결했습니다. 전해질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하는 염다리는 이온이 이동할 수 있는 경로 역할을 해서, 보다 원활한 화학반응이 가능했습니다. 다니엘전지는 1.1볼트를 발생시켰고, 통신 장치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획기적인 발전은 재충전이 가능한 ‘납축 배터리’의 탄생입니다. 이전까지의 배터리는 화학 반응 이후 영구적으로 방전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재충전이 불가능한 1차전지였습니다.
삼성SDI, 유연한 폼팩터 (인터배터리 2025)
그런데 1859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가스통 플란테(Gaston Planté)가 실험 도중 납을 묽은 황산에 넣어 전류를 통하게 하면 충전과 방전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납축 배터리(플란테전지)가 만들어졌고, 이렇게 충방전이 가능한 2차전지가 탄생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납축 배터리는 양극에 이산화납이, 음극엔 납, 전해질엔 묽은 황산이 사용되었습니다. 납축 배터리는 지금까지도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동용 배터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흔히 사용되는 건전지(dry cell)는 언제 개발되었을까요? 건전지가 개발되기 전까지 사용된 다니엘전지는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습식전지(wet cell)였기 때문에, 전해액이 흐르거나 용기가 부식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1870년 프랑스의 화학자 조르주 르클랑셰(Georges Leclanché)가 1.5볼트의 전지를 만들었지만, 이러한 습식전지의 한계 때문에 휴대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독일의 의사이자 발명가인 카를 가스너(Carl Gassner) 입니다. 그는 전해질에 석고가루를 섞어 풀처럼 만들어 1888년에 관련 특허를 출원했고, 1896년에는 대량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건전지는 세상에 알려지게되었습니다.
1899년 스웨덴 출신의 과학자 발데마르 융너(Waldemar Jungner)는 니켈카드뮴배터리를 발명했습니다. 이는 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로 납축 배터리보다 높은 에너지 밀도를 자랑했습니다. 이후 1903년에는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이 배터리 분야에서 성과를 냈습니다. 융너가 설계한 니켈카드뮴 배터리를 개량해 니켈철 배터리를 발명한 것입니다. 전해질로는 염화칼륨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왜 에디슨은 배터리를 개발하고자 했을까요? 에디슨이 목표로 한 것은 전기자동차에 쓰일 배터리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기자동차의 인기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발명한 니켈철배터리는 산업과 철도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1955년에 등장한 알카라인 배터리는 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알카라인 배터리가 나오기 전에 주로 사용된 배터리는 아연탄소배터리였지만, 전력이 낮고 유통기한도 짧아 사용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삼성SDI, 원통형 배터리 (인터배터리 2025)
에버레디 배터리사(Eveready Battery Company)의 루이스 어리(Lewis Urry)도 연구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전해질을 산성(염화암모늄)에서 염기성(알칼리성, 수산화칼륨)으로 바꾸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알카라인 배터리를 선보였습니다. 산보다 금속을 느리게 부식시키는 염기성 전해질로 인해 건전지의 수명이 늘어나게된 것입니다. 알카라인 배터리는 높은 전류와 긴 사용 시간으로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터리의 개발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볼타전지 이후 높은 전압으로 장시간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목표로 많은 연구자가 노력해왔으며, 소재와 구조의 발전 과정에서 전력이 높아졌고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습식 전지는 건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지금도 2차전지를 중심으로 배터리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삼성SDI 제공 (정리=하영선 기자)ysha@daily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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