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무공해차 4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내걸었다. 탄소중립을 위한 수송부문 대전환의 핵심 전략이자,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기후 리더십을 증명할 수 있는 지표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2025년을 목전에 둔 지금, 전기차 보급 속도는 예상보다 더디고, 하이브리드 차량이 소비자의 선택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인기 모델은 6개월 이상 기다려야 인도받을 수 있는 ‘친환경 인기차’로 둔갑했고, 전기차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이브리드에 이토록 끌리는가? 소비자는 단순히 편리함을 쫓는 게 아니다. 전기차에 대한 화재 불안, 인프라 부족, 리콜과 안전성 이슈, 보조금 축소 등 복합적인 구조적 불신이 소비자의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 충전소를 찾느라 헤매고, 겨울철 주행거리를 걱정하며, 중고차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현실에서 하이브리드는 적절한 '타협'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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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이 '타협'이 무공해차 시대를 늦추고 있다는 점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나 일반 하이브리드(HEV)는 전기모터를 사용하긴 하지만, 내연기관이 작동하고 배기가스를 배출한다.
일부 운전자는 충전을 아예 하지 않고 내연기관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실제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기대 이하다. 유럽은 이를 먼저 알아챘다. 독일은 PHEV 보조금을 2022년에 폐지했고, 프랑스·영국도 단계적 철회를 예고했다.
노르웨이는 정부의 보조금과 충전 인프라, 세금 혜택을 ‘무공해차’에 집중함으로써 2024년 신차의 90%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과도기 차량’에 머무르지 않고 전기차 전환을 정면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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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는 아직도 하이브리드를 ‘친환경’으로 포장하며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제조사들은 하이브리드를 ‘전기로도 가고, 기름으로도 간다’는 슬로건으로 홍보하며 전기차보다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선택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탄소중립 정책의 방향과 충돌하며, 소비자의 친환경 실천 의지를 왜곡시킨다.
중요한 건, 전기차 수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시장이 그 수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조금 체계의 불확실성, 충전 인프라 부족, 배터리 화재 안전성과 중고차 가치에 대한 신뢰 부족이 전기차 보급을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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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분명한 전환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하이브리드는 과도기의 산물일 수는 있어도, 미래 교통의 주인공은 아니다. 정부는 더 이상 하이브리드 차량을 친환경차로 분류하거나 정책적 유인을 주어서는 안 된다. 대신, 전기차 전환을 가속할 수 있는 실질적 투자와 인프라 확충, 소비자 신뢰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타협이 아닌 결단에서 시작된다. 편안한 과도기에 머무를수록 전기차 시대는 멀어진다. 하이브리드 차량 대기열이 길어졌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미루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