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제공, 정리=데일리카 하영선 기자] 2010년 이후 전자 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IT 기기의 확산입니다. 더 작고 얇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대한 고객의 선호도가 매우 높아졌고, 이는 배터리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일반 노트북에는 원통형 배터리, 프리미엄 슬림 노트북에는 파우치형 배터리가 사용되었습니다.
삼성SDI는 2012년 원통형 배터리보다 슬림하고, 파우치형 배터리보다 생산성이 좋으며, 표준화가 용이한 초슬림 각형 배터리를 개발했습니다. 두께 5밀리미터의 초슬림 각형 배터리의 구현으로 주요 노트북 고객사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삼성SDI는 노트북,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비롯해 전동공구, 정원공구, 전기자전거, 골프카트 등에도 배터리를 공급하며 소형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습니다. 특히 2005년 국내 최초로 전동공구용 배터리 개발에 성공하면서 전동공구 시장에 진입하게 됩니다.
과거 삼성SDI의 각형, 원통형, 파우치형 배터리 (삼성SDI 제공)
당시 일본 업체들이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전동공구 시장 속에서 삼성SDI는 높은 품질 기술력을 바탕으로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 갔습니다. 2007년에는 보쉬로부터리튬이온배터리 부문 최우수 공급업체로 선정되어 최고 품질상을 수상하며 시장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삼성SDI는 시장을 이끌고 있는 18650 배터리의 뒤를 이을 신제품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갈수록 높아지는 무선전동공구의 사양을 지원할 수 있는 고출력, 고용량 배터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삼성SDI는 더 크고 더 강력한 배터리 개발에 나섰고, 21700 배터리가 시장에 나오게 됩니다.
21700 배터리는 기존 18650 배터리의 용량을 50% 이상 늘린 제품으로 용량, 수명, 출력 등 주요 성능을 동시에 극대화한 최적사이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른 사이즈 대비 원가 경쟁력 또한 뛰어납니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21700 배터리는 전기자동차, 전동공구, 전기자전거, ESS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적용되며 원통형 리튬이온배터리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삼성SDI의 18650 원통형 배터리와 21700 원통형 배터리 (삼성SDI 제공)
최근에는 스마트워치, 스마트밴드, 무선이어폰과 같은 웨어러블 제품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삼성SDI는 2014년 당시 세계 최대 용량(210mAh)의 스마트밴드용 커브드 배터리를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캔디 크기의 초소형 배터리와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용 배터리들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삼성SDI는 2009년 10월 ESS 사업 TF를 가동하면서 ESS용 배터리 사업의 첫걸음마를 떼게 됩니다. 발전 등 전력 분야에 관한 기초적인 스터디와 시장조사, 사업자 검토를 거쳐 이듬해인 2010년 10월에 ESS 사업팀을 발족하게 됩니다.
삼성SDI는 배터리를 이용한 ESS가 더 효율이 높고 친환경적이라며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ESS의 개념을 이해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좀처럼 수주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정부 주도의 시범사업과 국책과제에 참여하며 시장을 관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2010년 제주에서 진행한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과 대구에서 진행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실증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사업의 기초 토대를 닦게 됩니다.
제주 ESS 실증단지 (삼성SDI 제공)
그런데 의외의 시기에 의외의 장소에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11년 3월 동일본지진이 발생해 일본 내 ESS에 대한 강력한 니즈가 생겨난 것입니다. 당시 일본은 사고로 마비된 원전의 공백을 화력발전으로 메우면서 전력 단가가 폭등하는 등 전력시장은 말 그대로 대혼돈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에너지 정책 기조가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빠르게 전환되었고, 산업현장 뿐 아니라일반 가정에서도 자급형 전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확산되었습니다.
이 같은 기류를 감지한 삼성SDI는 가정용 ESS배터리의 일본 진출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가정용 ESS을 가장 먼저 출시한 업체인‘니치콘’을 만나며 급물살을 탔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가정용 ESS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때라사업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려웠지만, 2011년 10월 두 회사 최고경영진이 만나 마라톤협상을 한 끝에 사업 추진에 전격적으로 합의하기에 이릅니다.
이를 계기로 삼성SDI의 ESS용 배터리는 초기의 부진을 털고 성장 궤도에 진입하게 됩니다. 당시 삼성SDI는 니치콘에 독점적으로 배터리를 공급하였는데요. 니치콘은 2013년까지 3년간 일본 가정용 ESS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삼성SDI는 일본 내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산업용 ESS배터리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유럽 ESS 시장 진출에 필요한 경험과 자신감을 축적하게 됩니다.
삼성SDI의 배터리가 적용된 니치콘의 가정용 ESS
2015년 파리협정 발표로 글로벌 ESS 시장 역시 성장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탈원전, 탈석탄을 추진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신재생 에너지가 확대되었고,국가 차원의 지원정책이 발표됨에 따라 ESS 수요가 급증하게 됩니다. 영국과독일은 원자력 발전의 전면 폐지를 추진하였고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은정부에서 신재생 발전 비중 확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ESS 사업의 터닝 포인트가 됩니다.
삼성SDI는 고품질 배터리를 기반으로 유럽의 전력용과 가정용, 미국의 전력용과 상업용, 일본의 가정용 등 시장과 고객에 맞춤한 최적화된 솔루션을공급했습니다. 무엇보다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시장을 개척한 결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전략적 마케팅의 일환으로 경쟁력 있는 업체와 협력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현지 경쟁력을 대폭 강화해 신시장 개척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2015년 7월 미국의 발전 회사인 듀크의 풍력 연계 ESS 프로젝트 수주를시작으로 GE, ABB 등과도 공고한 협력 관계를 맺게 됩니다.
미국의 ESS 시장의 경우에는 사업 초기부터 활발히 공략했음에도 경험부족으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중이를 한 번에 만회할 수 있는반전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2015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알리소캐니언 가스저장소의 치명적인 가스 누출 사고로 인해 발전소 가동이 불가능해짐에 따라심각한 전력 부족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됩니다. 상황을 자세히검토한 주정부는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게 됩니다.
2016년 5월 캘리포니아 공공설비위원회(CUPC, California Utilities Commission)에서 400MWh 규모의 ESS 설치 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400MWh는 당시미국의 연간 ESS 시장 전체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였습니다. 위원회는 실행기간을 6개월이라는 단기간으로 설정해 준비된 기업만이 사업에 참여하도록했습니다.
삼성SDI는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고 ESS 회사들과프로젝트를 진행해 각형 배터리 약 70만여 개에 해당하는 240MWh급ESS용배터리를 공급하는 성과를 이뤄냅니다. 이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확실한존재감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설치된 ESS 시설 (삼성SDI 제공)
이를 계기로 2018년 하와이 카우아이프로젝트도 수주했습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촬영지로 유명한 하와이 카우아이섬에 가면 삼성SDI의 배터리가 탑재된 ESS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업체의 대규모 전력용 프로젝트에 배터리를 공급하며 삼성SDI는 국내외 ESS 현장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후 시장의 니즈에 맞춘 컨테이너형 배터리 제품 SBB(Samsung Battery Box)를 출시하고, 데이터센터 등에 들어가는 UPS(무정전전원공급장치)용 배터리, BBU(백업 배터리)용 배터리제품을 통해 ESS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는 만큼그 미래가 더욱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