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독일)=데일리카 하영선 기자] 벤츠의 설립자인 칼 벤츠는 1885년 ‘페이턴트 모터바겐’이라는 ‘말 없이 달리는 마차’를 만든 후, 1886년 1월 독일 특허청에 이 차를 등록한다. 당시 특허번호는 37435. 배기량 954cc의 이 차의 출력은 0.75마력(400rpm), 최고속도는 시속 16km에 불과한 삼륜차였다. 참고로 사람들이 걷는 속도는 시속 4km다.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등장하기 전에도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지역에서는 이미 자동차가 소개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특허를 통해 이 발명품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로 공식 인정받는다. 그래서 ‘자동차 역사는 곧 벤츠의 역사’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 달 25일(현지시각) 오전 9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자리한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이 곳은 벤츠의 고성능 브랜드 메르세데스-AMG의 생산공장이 위치한 아팔터바흐에서 불과 40여km 거리에 위치한다.
박물관 정문 앞에는 고성능 브랜드 AMG의 GT C 로드스터 등의 나란히 자리잡아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참고로, 메르세데스-AMG는 1967년에 설립됐는데, 1976년부터 벤츠의 고성능차를 맡게된다. AMG는 ‘한 사람이 하나의 엔진을 담당한다(One Man, One Engine)’는 철학을 고수한다. 이 같은 엔진 생산 방식은 세계에서도 유일하다. 엔진을 만드는 엔지니어는 장인(匠人)으로 불린다.
페이턴트 모터바겐, 쿼드리사이클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2006년에 건립된 벤츠 박물관은 유선형의 강화유리로 층층이 둘러싸인 모습이 이채롭다. 한국식으로는 9층 건물이지만, 독일은 1층을 0층으로 간주하기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8층까지 적혀있다.
박물관은 유엔(UN) 스튜디오의 건축가 벤 반 베르켈과 캐롤라인 보스가 설계을 맡았는데, 우아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다. 벤츠라는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에도 걸맞는 인상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자동차 역사의 살아있는 보고(寶庫)다. 박물관은 총 1만 6500㎡ 규모에 총 160여대의 자동차와 약 1500점 정도의 전시품들이 전시된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지금까지 139년이라는 자동차 역사를 그대로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은 맨 윗층인 8층부터 0층까지 나선형 구조로 설계돼있어 걸어서 한층한층을 내려오면서 시대별, 주제별로 소개되는 차량들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코스는 레전드룸과 컬렉션룸으로 구분된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Simplex. 1902)
7개로 구성된 레전드룸은 벤츠 브랜드의 역사를 시대별로 서술해 놨고, 4개로 나눠진 컬렉션룸은 벤츠의 포트폴리오와 컬렉션 등을 주제별로 전시해 놨다. 모든 벽면과 천장, 램프와 기둥들은 아치형태인데, 부드럽게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유선형 타입이다.
레전드룸에는 1886~1900년, 1900~1914년, 1914~1945년, 1945~1960년, 1960~1982년, 그리고 제로 에미션 모빌리티관과 레이싱 기록관으로 구성된다. 또 컬렉션룸에는 교황이 즐겨탔던 차량이나 셀러브리티카, 소방차, 트럭, 버스 등 흥미롭고 다양한 역사를 담고 있는 테마로 꾸려졌다. 관람자들은 벤츠의 다양한 컬렉션을 구매할 수도 있다.
8층 전시관에 들어서면, 라운지 중앙에는 최초의 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자리잡고 있다. 단기통 4-스트로크 가솔린 엔진이 탑재됐다. 엔진 무게는 100kg이 넘었고, 차체 중량은 총 265kg에 달했다. 1분에 450m를 갈 수 있는 정도다.
참고로, 페이턴트 모터바겐은 지구상에서 단 10대 정도만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4년 벤츠 본사에서 기증한 페이턴트 모터바겐 1대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도 영구적으로 전시된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페이턴트 모터바겐 바로 옆에는 고틀립 다임러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였던 바퀴가 4개짜리 쿼드리사이클(Quadricycle)이 전시된다. 배기량 565cc의 V2 엔진이 탑재됐는데, 1분에 700m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최고속도는 시속 18km. 다임러와 마이바흐에 의해 디자인된 쿼드리시클은 그 해 파리모터쇼에서 공개돼 큰 호응을 얻었는데, 당시 파리 자동차 산업 발전에 불씨를 지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92년에는 다임러에서 가솔린 엔진의 시초가 되는 소방 펌프를 이용한 차량인 모터-프로이어스프리체(Feuerspritze)를 내놓는다. 당시 이 마차는 2기통 엔진의 7마력의 파워를 지녔다. 1분당 300리터 규모의 펌프 출력은 당시 소방관 32명이 한번에 작업하는 양과도 같은 정도다.
벤츠 빅토리아(Victoria)는 1893년에 소개됐는데, 칼 벤츠가 만든 첫번째 4륜 차량에 속한다. 배기량 1726cc로 3마력의 엔진 파워를 지녔으며 1분에 450m 거리를 달렸다. 최고속도는 시속 18km 수준이었다. 빅토리아는 2개의 앞 바퀴를 통해 코너링에서도 안전성을 더했다.
1894년에 생산된 벤츠 벨로시피드(Velociped)는 벨로(Velo) 또는 바리안트(Variants)로도 불려졌는데, 1901년까지 무려 1200대가 판매된 차량이다. 벨로시피드는 최초의 소형차에 속하면서도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모델이기도 하다. 벨로시피드는 배기량 1045cc의 1.5마력 파워를 지녔으며, 1분에 450m를 달렸다. 최고속도는 20km 수준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벤츠 옴니버스(Omnibus)는 1895년에 생산된 8인승 버스다. 배기량 2651cc로 최고출력은 5마력의 파워를 지녔다. 1분에 600m를 달릴 수 있었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20km를 나타낸다. 옴니버스는 독일 서부지역에서 몇 주간 실제 운영됐다.
다임러는 1896년 배기량 1060cc의 리멘바겐(Riemenwagen)을 내놓는다. 최고출력은 4.6마력으로 1분에 740m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최고속도는 시속 18km 수준이었다. 150대 정도가 생산됐는데, 당시에는 대량으로 생산된 규모에 속한다. 리멘바겐은 빌헬름 마이바흐가 개발한 피닉스 엔진을 탑재했다. 여기에 분사 노즐 카뷰레터 방식과 벨트를 이용한 동력을 전달하는 등 새로운 기술력이 동원됐다.
1899년 다임러가 만든 계샤프트바겐(Geschaftswagen) 트럭도 전시된다. 계샤프트바겐은 배기량 1527cc 2기통 엔진이 탑재돼 5.6마력의 파워를 지닌다. 1분에 720m 거리를 주행했으며, 최고속도는 16km를 나타냈다. 짐은 최대 500kg까지 실을 수 있었다.
1902년에 선보였던 메르세데스-심플렉스도 눈길을 모은다. 심플렉스는 배기량 6785cc로 최고출력은 무려 40마력에 달했다. 1분에 1100km까지 달릴 수 있었는데, 최고속도는 시속 80km까지 가능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엔진 파워다. 빌헬름 마이바흐가 디자인한 이 차는 현대까지 자동차 역사상 가장 성공했던 최고의 차로 평가받는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컬렉션룸
시대별, 주제별에 따라 전시된 차량을 관람한 후, 지상층인 0층에서는 벤츠의 컬렉션 뿐 아니라 오래된 클래식카를 만날 수 있다. 오래된 클래식 중고차도 소개되고 있어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는 구조다. 가격대는 2만 유로(약 3211만원) 전후의 벤츠 클래식카들도 이곳에서 구입 가능하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관계자는 “이곳 박물관은 메르세데스-벤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라며 “박물관이 건립된 이후 지금까지 매일 평균 3000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