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와 수소차 등 무공해차 4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내세우며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보급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실제 도로 위를 달리지 않는 차량도 많아 탄소 감축 효과는 제한적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세워둔 차에도 보조금 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책의 핵심 문제는 보조금이 ‘구매 순간’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차를 샀다는 사실은 보상하지만, 얼마나 무공해 주행을 했는지, 실제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는지는 반영하지 않는다. 무공해차의 환경효과는 도로 위를 달릴 때 비로소 나타난다.
따라서 전기·수소차가 내연기관차 대신 많이 달릴수록 더 큰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세금이 단순한 소비 촉진이 아니라, 실제 온실가스 감축과 대기질 개선으로 이어진다.
기아 EV9
해외 사례도 이를 잘 보여준다. 노르웨이는 단순한 구매 보조금만으로 세계 1위의 전기차 보급률을 달성하지 않았다. 통행료 감면, 전용차선 이용, 주차 할인 등 운행 단계 혜택을 제공해 무공해차 사용을 생활화했다. 독일 역시 기업 차량 운행에 세제 혜택을 주어 보급과 사용을 동시에 관리했다.
우리나라의 현 제도를 보면, 2025년 환경부 개편안은 여전히 구매 중심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 안전 요건(OBD, 배터리 정보 제공 등)에 따라 차량별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지만, 운행거리 연동 보조금은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다만 차량정보수집장치 의무화가 시작되면서, 앞으로는 주행거리와 충전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성과 연동형 인센티브를 설계할 토대는 마련됐다. 문제는 여전히 도로 위를 달리는 노후차다. 현재 국내에는 10년 이상 된 차량이 900만 대를 넘어섰고, 그중 절반 이상이 경유차다.
볼트 EUV (GM 밀포드 프루빙 그라운드, MPG)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노후 디젤차 1대는 신차 대비 질소산화물 6배, 초미세먼지(PM2.5) 4배를 더 배출한다. 저감장치(DPF) 보급 사업이 진행됐지만, 정기적인 클리닝과 사후 관리가 부족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예도 있다.
따라서 저감장치 성능 관리 강화, 조기폐차 지원 현실화, 정기검사 강화 같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저공해 대책도 필요하다. 주행거리 지원금은 이런 노후차 대책과 병행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무엇보다 연간 주행거리가 많은 차종부터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택시, 어린이 통학버스, 셔틀, 택배·물류 차량처럼 하루 수백 km를 달리는 차종은 무공해차 전환 효과가 가장 크다. 이들부터 지원금을 적용해 정책 효과를 입증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개인 승용차까지 전국 확대한다면 보급과 운행을 동시에 촉진할 수 있다.
르노 전기 SUV 세닉(Scenic) E-Tech
무공해차 구매 보조금이 차를 사기 위한 제도라면, 주행거리 지원금은 내연기관차 운행을 대체해 환경을 살리기 위한 제도다.
구매와 운행을 아우르는 이중 지원 구조가 정착되고, 동시에 노후차 관리 강화가 병행될 때 비로소 사회 전체의 배출 저감 효과가 현실화된다. 2030년 탄소중립 목표를 구호가 아닌 실질적 성과로 만들기 위해 지금이 제도 전환의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