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일본의 완성차 브랜드 렉서스가 일본 진출 20년을 맞이했다. 1989년 미국 시장에서 처음 설립된 이후, 2005년 일본 내수 시장에 본격 진출한 렉서스는 20년간 프리미엄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며 토요타의 고급화 전략을 대표해왔다.
출발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까지 토요타는 ‘저렴하고 튼튼한 차’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특히 까다로운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당시 수입차 시장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었고, 토요타 역시 이에 맞설 수 있는 고급 상품이 절실했다. 이에 토요타는 이들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 위해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를 출범시켰다.
첫 런칭 모델은 토요타 셀시오를 기반으로 한 LS400이다. 단아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실내, 부드러운 승차감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후 토요타 랜드크루저의 고급형 LX 역시 흥행에 성공하며 브랜드 입지를 공고히 했다.
렉서스, ES 300h
렉서스는 곧 문화적 아이콘으로도 부상했다. 1990년대 미국 힙합계에서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차로 언급되며 대중문화 속에 자리 잡았다. 노토리어스 B.I.G의 히트곡 Hypnotize 속 가사 “On the Lexus, Lx, four and a half”는 당시 최고급 SUV였던 LX450을 타는 것이 성공의 대명사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인기는 2005년 일본 내수 시장 진출 후에도 이어졌다. 첫 해부터 3만~4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고급차 시장 1위에 올랐고, 이후에도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독자적 위상을 굳혔다. 닛산의 인피니티, 혼다의 아큐라가 도전했지만 렉서스의 아성을 흔들기는 쉽지 않았다.
렉서스, RX 500h F SPORT Performance
현재까지도 렉서스의 인기는 건재하다. 2024년 기준 토요타와 렉서스 브랜드는 총 1015만 9336대를 판매하며 폭스바겐 그룹(923만 9500대)을 제치고 5년 연속 세계 판매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시장에서도 같은 해 렉서스가 1만 3969대(점유율 5.3%)를 기록하며 수입차 5위, 토요타는 9714대(점유율 3.7%)로 6위를 기록했다. 두 브랜드를 합치면 총 2만 3683대로 점유율 9%를 차지, BMW·메르세데스-벤츠·테슬라에 이어 4위에 오르며 강력한 존재감을 입증했다.
이 같은 성과 속에서 렉서스는 올해 일본 런칭 20주년을 맞아 임직원들과 함께 기념행사를 열었다. 토요타는 지난 9일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전국 딜러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개최하고, 지난 20년간 브랜드 역사를 함께한 파트너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렉서스 LX 700h
아키오 토요다 회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함께 즐겨 달라”는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행사에서는 2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과 함께, 엔진 사운드만으로 차종을 맞히는 ‘렉서스 퀴즈’ 등이 진행됐다. 또 사토 코지 사장이 무대에 올라 차세대 BEV 콘셉트카와 신형 IS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2005년부터 렉서스 개발에 참여해 2020년 사장에 취임한 사토 사장은 “렉서스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온 브랜드다”며 “앞으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렉서스를 발견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행사에 참석한 일부 딜러 직원들은 “렉서스는 내 인생의 일부다”며 “앞으로 다가올 30주년도 함께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렉서스 LM 500h
렉서스가 일본 진출 20주년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완성차 업계에도 의미가 크다. 전통 강자였던 유럽 브랜드 중심의 시장 구도에 균열을 만든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 역시,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앞으로 렉서스가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온 경험을 바탕으로, 전동화 시대에 맞선 차세대 전략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