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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저평가된 전설, 서자 취급은 끝났다”..메르세데스-AMG SL43

Mercedes-AMG
2025-10-02 14:45:20
메르세데스AMG SL 43 그레이트 화이트 에디션
메르세데스-AMG SL 43 그레이트 화이트 에디션

[데일리카 김경현 기자] 메르세데스-벤츠 SL은 전설에 가깝다. 1954년, ‘슈퍼 라이트(Super-Light)’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등장한 W121과 W198은 스포츠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모델이었다. 특히 1989년에 나온 4세대 R129는 북미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얀 SL을 타고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를 달리던 힙합 스타들의 모습은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고, 스티브 잡스의 애마로도 잘 알려지며 대중의 우상으로 군림했다.

그랬던 SL이 2022년, 7세대로 거듭났다. 하드탑을 버리고 소프트탑으로 회귀했으며, 2+2 시트를 적용해 실용성을 넓혔다. 유려한 라인과 날렵한 비율은 최신 벤츠 패밀리룩 속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SL 라인업 중에서 유독 저평가된 모델이 있다. 바로 SL43이다. AMG의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4기통 엔진을 얹었다는 이유 하나로 평가절하된 것이다. 강렬한 V8과 V6 모델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메르세데스AMG SL43 전면
메르세데스-AMG SL43 전면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4기통 특유의 거친 진동이나 성글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AMG다운 응답성과 경쾌한 가속감, 그리고 의외의 효율성까지 보여준다. AMG GT와 같은 상위 모델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SL43만의 합리성과 경쾌함은 재평가될 만하다.

파워트레인의 경우 직렬 4기통 2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9단 AMG 스피드시프트 MCT 변속기가 탑재된다. 여기에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TM 팀의 기술 기반의 전자식 모터가 더해져 완성도를 높였다.

덕분에 최고출력은 421마력, 최대토크는 51kg.m를 발휘한다. 덕분에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데 4.7초가 소요되며, 최고속도는 278km/h에서 제한된다.

SL43의 전반적인 필링은 의외로 상당히 부드럽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개입하지만 이질감은 전혀 없다. 터보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흔히 지적되는 4기통 특유의 잔진동이나 소음도 잘 억제됐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엔진 마운팅이나 흡·차음재 보강이 실제로 체감되는 수준이다. 같은 엔진을 쓰는 AMG A45, CLA 45, GLC 43/63과 비교해도 SL이 가장 세련됐다.

메르세데스AMG SL43 전측면
메르세데스-AMG SL43 전측면

배기음은 기대 이상이다. 오픈에어링 상황에서 터널을 통과하며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팝콘 사운드와 함께 강렬한 배기음이 귀를 압도한다. 웬만한 6기통보다 크고, 존재감은 확실하다. 하지만, 플래그십 63 모델에게는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발진 성능도 만족스럽다. 저회전 영역에서는 전기 모터의 개입이 뚜렷하다. 덕분에 SL 특유의 묵직한 차체를 가볍게 밀어낸다. 5000rpm을 넘어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상위 모델 63만큼의 폭발력은 없지만, SL43은 미들급 레플리카 바이크처럼 ‘쥐어짜며 달리는 재미’가 있다.

서스펜션은 AMG답게 단단할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부드럽다. 요철이나 방지턱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감쇄력을 최대로 조여도 일상 주행에서는 충분히 편안하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전환해 몰아붙이면 본색을 드러낸다. 급격한 코너에서도 불안한 움직임은 없다. 전자장비 개입은 다소 보수적이다. 조금만 타이어가 그립을 놓아도 TCS(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이 개입해 출력을 제어한다. 하지만, 모든 안전 기능을 해제하고 달리면 뒷바퀴가 자연스럽게 흐르며 ‘우아한 드리프트’를 연출한다. 카운터 스티어에 대한 반응도 빠르다. 완성도 높은 세팅임을 보여준다.

메르세데스AMG SL43 측면
메르세데스-AMG SL43 측면

디자인은 여전히 아릅답다. 메르세데스-AMG SL은 늘 ‘아름다움’으로 회자됐고, 오늘날에도 그 명성을 이어간다. 전설적인 300 SL의 긴 보닛과 짧은 오버행 비율을 현대적으로 다듬으면서도, AMG만의 스포티함을 강하게 드러냈다.

SL43은 형님격인 SL63과 차이를 둔다. 사각 테일파이프 대신 원형 배기구를 장착해 좀 더 유려한 분위기를 강조했고, 후면 범퍼 라인도 매끄럽게 다듬어졌다. 전체적인 비율은 길게 뻗은 보닛과 날카롭게 누운 전면 유리로 ‘SL다움’을 그대로 이어간다. AMG 전용 라디에이터 그릴의 14개 세로 슬랫도 세련됐다.

인테리어는 한마디로 ‘하이퍼 아날로그(hyperanalogue)’다. 과거 300 SL의 미니멀리즘에서 영감을 받아 아날로그 감성을 살리면서도, 최신 디지털 요소가 균형 있게 결합돼 있다. 제트기 터빈을 닮은 송풍구 사이에는 12.3인치 계기반과 11.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가 자리 잡았다. 단순히 최신 장비를 집어넣은 게 아니라, 과거의 감각과 현재의 기술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이다.

앉는 순간 느껴지는 질감도 고급스럽다. 헤드레스트와 등받이는 몸을 자연스럽게 감싸고, 소프트탑을 닫았을 때의 정숙성은 럭셔리 쿠페 못지않다. 반대로 오픈에어링 상황에서는 풍절음을 최소화해 AMG 배기음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메르세데스AMG SL43 후측면
메르세데스-AMG SL43 후측면

실내에 앉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12.3인치 풀 디지털 계기판과 11.9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다. 최신 MBUX 인포테인먼트는 반응이 빠르고, 주행 모드에 따라 화면 구성이 매끈하게 변한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도 무선으로 연결돼 케이블을 챙길 필요가 없다.

주행 모드를 바꿀 때마다 성격이 달라지는 AMG 드라이브 셀렉트도 매력적이다. 일상적인 ‘컴포트’ 모드에서는 럭셔리 투어러의 품격을 유지하다가,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면 즉각적인 반응과 배기음이 터져 나오며 AMG 특유의 본능을 드러낸다.

차체 거동을 결정짓는 AMG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은 상황마다 얼굴을 달리한다. 감쇄력을 풀어두면 요철 구간에서도 차체가 유연하게 반응하고, 단단히 조이면 노면을 움켜쥔 듯한 안정감이 살아난다.

개폐 속도가 빠른 소프트탑 루프는 오픈에어링의 즐거움을 즉각적으로 열어주며, 오픈 주행 시에도 부메스터 3D 오디오는 충분히 힘을 발휘한다. 바람이 휘몰아쳐도 사운드는 선명하게 귀에 꽂힌다. 특히, 벤츠의 전매 특허 에어스카프(AIRSCARF)가 장착된 만큼, 찬바람이 불어도 굳이 히터를 세게 올릴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계절과 상관없이 지붕을 열 수 있다.

메르세데스AMG SL43 후면
메르세데스-AMG SL43 후면

시트 역시 편안함과 스포티함을 동시에 담았다. 통풍과 열선은 기본이고, 장거리에서도 피로를 줄여주는 마사지 기능이 더해졌다. AMG 특유의 버킷 스타일이지만 허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착좌감이 인상적이다.

안전 장비도 빠짐없이 담겼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보조, 사각지대 어시스트가 고속도로에서 든든하게 작동해준다. 장거리 투어링에서도 운전자가 느끼는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SL 43은 ‘전설의 SL’을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부담을 줄인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AMG 특유의 감각을 이어받았다.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날카로운 주행 감각과 여유로운 크루징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SL 43은 “작은 심장을 가진 SL”이라는 편견 속에 가려져 있지만, 직접 경험해보면 오히려 가장 ‘현명한 SL’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설의 이름을 부담 없이 즐기고 싶은 소비자라면, 지금이야말로 SL 43을 다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메르세데스AMG SL43 내부 전면
메르세데스-AMG SL43 내부 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