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카 하영선 기자] 우리나라에서 연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26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그 수치는 5000명 이상으로 집계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자동차 운전 문화를 비롯해 속도 제한 등 안전 운전을 위한 법률·제도적 장치가 선진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만, 일반적인 운전자들의 단순 실수로 인한 추돌 사고와는 달리, 주행 중 차량이 갑자기 고속으로 돌진하면서 사상자를 불러일으키는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최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2018년형 제네시스 3.3 G80이 역주행 하면서 고속으로 주행하다 총 16명의 사상자를 낸 차량 사고는 안타까움을 더한다. 버스 운전기사로 수십년 간 활동해온 사고 운전자 차모(68)씨는 ‘급발진’을 주장한다. 운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기사였던 만큼 그의 운전조작 실수가 아니고, 차량에 결함이 원인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 박병일 명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사고차는 긴급제동장치(전방충돌방지보조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해 리콜을 받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더라도, 긴급제동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됐더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엔진을 컨트롤하는 전자제어장치(ECU)가 온도나 습도, 진동, 열 등의 상황에 따라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하면서, 이번 사고는 차량 결함 쪽에 70%, 운전자 실수에 30%의 비중을 뒀다. 그는 특히 해당 사고차는 브레이크 시스템이 기존의 (일반차)와는 달리 브레이크를 밟으면 유압 브레이크가 아니라 전자제어를 컴퓨터가 제어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 점에 대해서 기자가 확인해본 결과, 전방충돌방지보조 장치는 당시 옵션으로 선택사양이었는데, 사고차는 이 옵션이 제외된 차량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전방충돌방지보조 기능이 탑재됐더라도, 가속페달이 일정 이상으로 밟힐 경우 이 기능은 자동 해제된다. 운전자의 가속 의지가 시스템 기능보다 우선시된다는 의미다. 또 해당 차량은 당시 이 시스템의 제작 결함으로 인한 리콜은 없었다.
또 다른 자동차 전문가로 꼽히는 이호근 대림대학교 교수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스위치가 작동돼 신호값이 사고기록장치(EDR)에 저장되고 브레이크등은 직접 연결로 점등된다며, 브레이크 스위치와 램프는 전선으로 연결돼 있어 ECU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시동이 꺼져있을 때에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작동하게 되는데, 이는 ECU와는 별개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와 함께 전방충돌방지보조 기능이 적용된 차량이라도 위험 상황인 경우,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과하게 밟거나 핸들을 급격히 꺾는 경우엔 이 기능은 (자동으로) 해제된다며, 이는 상황에 따라 시스템에 의한 긴급제동이 더 위험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운전자의 가속 의지가 우선 반영되도록 설계된 때문이라며 박병일 명장과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30년 가까이 시민활동을 펼쳐온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급발진으로 추정된 사고 차는 60대 이상의 남·녀 운전자가 많은 것으로 분포된 것으로 조사된다며,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까지는 조사가 필요하지만 고령 운전자의 부주의, 운전 미숙에 따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해법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자동차는 지난 1886년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선보인 이후 약 14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는데, 그동안 자동차는 ‘기계’로 불려왔다. 이젠 커넥티드카 등 고도의 기술력과 최첨단 안전 시스템이 더해진 만큼 전자, 또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로 일컫는다. 자동차가 단순한 ‘기계’에서 ‘SDV’로 발전하면서,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한 ‘급발진’ 현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25년여간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필자가 이 같은 안타까운 차량 사고를 접하면서, ‘급발진’이냐 아니면 ‘운전자의 조작 미숙’이냐를 놓고 정확히 판단하기엔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모양새다. 이는 감정이나 추정보다는 과학적·합리적인 판단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급발진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완 작업은 시급히 요구된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주행 시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을 정확히 살펴볼 수 있는 블랙박스를 옵션으로 적용해 소비자가 선택토록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사고 시 운전자의 페달 조작 유무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또 사고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60대 이상의 운전자들에 대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정부의 법률적·제도적 장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하영선 기자ysha@daily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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